고건(高建) 대통령권한대행은 권한대행을 맡은 이후 매일 아침 국가안전보장회의(NSC)로부터 국내외의 안보동향이 요약된 일일보고서를 받고 있다.
NSC는 종전에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에게 이 보고서를 e메일로 전송했으나, 고 대행에게는 김대곤(金大坤) 국무총리비서실장을 통해 '친전(親傳)'문서로 전달하고 있다.
정부 각 부처의 업무보고를 받는 광경도 사뭇 다르다. 노 대통령은 다양한 그래픽 작업이 가능한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인 '파워 포인트'를 활용한 보고를 받아왔다. 그러나 고 대행은 최근 업무보고를 재개하면서 각 부처에 "파워 포인트 사용을 지양하고, 문서로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보고를 최대한 간소하게 하라는 취지였지만, 50대의 젊은 대통령과 60대 후반의 행정가 출신인 고 대행의 다른 점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보고받는 스타일도 상당히 다르다는 게 각 부처 간부들의 전언이다. 이전에 노 대통령은 '그런 정책을 추진하면 다른 분야에 어떤 파급효과가 있느냐'는 식의 큰 줄기에 관한 질문을 던졌는데, 고 대행은 아주 실무적인 부분까지 캐묻고 있다는 것.
그런 탓에 각 부처에서는 "노 대통령 앞에서는 처음에는 굉장히 긴장했다가 막상 보고할 때는 대통령이 가벼운 농담도 하고 해서 분위기가 편해졌다. 그러나 고 대행은 아무래도 총리니까 별 부담 없이 보고에 임했다가 아주 세부적인 질문을 받고 당황하는 일이 많다"는 비교평가도 나오고 있다.
특히 관료사회에서는 노 대통령은 처음에 시아버지를 대하는 것 같은 어색함이 있었는데 실제로 겪어보면 친정아버지 같고, 고 대행은 친정어머니 같은데 막상 겪어보면 '이런 시어머니가 어디 있나'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비유하기도 한다.
예컨대 25일 행정자치부 업무보고 때 고 대행은 충북지역의 폭설피해와 관련해 "당시 상황실에 3번이나 들러서 현장 상황을 지도로 그려달라고 했는데, 결국 안 나오더라. 헬기를 타고 현장에 가보니 가변차선으로 얼마든지 차량을 빼낼 수 있었는데, 현장 감각이 없었던 것 아니냐"고 질타했다.
청와대의 한 수석비서관도 "고 대행에게 몇 차례 보고를 해보니, 의중을 잘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깐깐하게 이것저것 물으시더라. 공부를 제대로 안 하고 갔다가는 창피당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전했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할 일도 없고, 탄핵심판이 지연되면 총선 직후 예상됐던 대폭 개각도 미뤄질 것이니 요즘처럼 장관들이 편할 때가 어디 있겠느냐"는 농담도 나오지만, 한 국무위원은 "천만의 말씀"이라고 일축했다.
청와대와 총리실 안팎에서는 노 대통령이 당선 직후 '개혁대통령-안정총리'론을 펴면서 고 대행을 총리로 지명할 때부터 이런 비상사태가 벌어질 것을 예견이라도 했던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김정훈기자 jng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