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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젊은 ‘문화 게릴라’ 뭉쳤다…뮤지컬 ‘천국과 지옥’

입력 | 2004-03-29 17:59:00

뮤지컬 ‘천국과 지옥’에서 ‘플루톤’을 리더로 하는 지옥클럽의 파워풀한 힙합댄스. ‘제우스’가 이끄는 ‘천국클럽’은 클래식한 음악에 맞춰 발레를 변형한 듯한 춤을 춘다. 두 춤을 비교하는 ‘천국과 지옥’은 성장기 청소년들이 겪을 법한 고민을 음악과 춤으로 풀어낸다. 박주일기자


큐피드의 화살에 맞아 에우리디체와 사랑에 빠진 바람둥이 제우스!

‘신(神)중의 신’ 제우스가 머리엔 선글라스를 끼고, 작고 검은 망사날개가 달린 섹시한 복장으로 현란한 ‘파리춤’을 추기 시작했다. 근엄한 흰색 날개를 벗어던지고 파리로 변신해 춤추는 제우스의 모습에 객석에선 떠나갈 듯 폭소가 터져 나오고, 에우리디체도 결국 마음을 송두리째 빼앗긴다.

서울 동숭동 대학로 게릴라극장에서 5월2일까지 공연되는 뮤지컬 ‘천국과 지옥’(극본·연출 남미정)에서 관객들 호응이 가장 뜨거운 제우스의 ‘파리춤’ 장면. 배우들의 열정과 땀방울을 생생히 느낄 수 있는 소극장 뮤지컬의 매력이 물씬 풍긴다.

‘천국과 지옥’은 프랑스 작곡가 자크 오펜바하의 오페레타를 바탕으로 재창작된 클래식과 힙합 하드록의 퓨전뮤지컬. 대학 캠퍼스의 뮤지컬 학과(천국클럽) 학생들과 거리의 힙합그룹(지옥클럽)이 춤과 노래 대결을 펼친다. 에우리디체 역을 맡은 선주는 천국클럽의 리더 제우스(동현)와 지옥클럽의 리더 플루톤(정기)을 만나 둘 사이에서 사랑의 방황을 시작한다. 사랑과 꿈에 대한 고민을 신화와 현실을 오가는 탄탄한 스토리로 경쾌하게 그려냈다.

○석달간 합숙하며 연기 ‘호흡’

연희단거리패의 젊은 `게릴라` 이윤주, 남미경, 김경익씨(왼쪽부터). 권주훈기자

‘천국과 지옥’ 첫 공연을 마친 후 연출가 남미정씨는 한동안 객석에 앉아 눈물을 흘렸다. 연희단거리패가 창설한 뮤지컬 전문극단 ‘STT뮤지컬 컴퍼니’의 신입단원들이 석 달 간 서울 우리극연구소와 밀양연극촌에서 합숙하며 흘렸던 땀방울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창단 18년째인 연희단거리패는 올해 제40회 동아연극상에서 가장 새로운 공연형식을 추구하는 단체에게 수여하는 ‘새 개념 연극상’을 받았다. 이렇듯 연희단거리패가 항상 패기와 열정이 넘치는 ‘젊은 극단’으로 평가받는 힘은 끊임없이 신인배우들을 수혈해주는 밀양연극촌에 있다. 이곳에서 배우들은 단체로 숙식하며 전국에서 공연할 작품을 만들어낸다.

“서울과 달리 밀양에서는 밤새 연습해도 이웃에서 뭐라고 하지 않아요. 쌀을 살 돈이 없으면 고구마를 먹으면 되지요. 서울에서 세상과 싸우다 지치면 단원들은 언제라도 고향 같은 밀양에 쉬러 내려옵니다.” (남미정)

○이윤택 “나는 관군 소속이 됐다”

‘천국과 지옥’이 공연되는 게릴라극장은 영화 뮤지컬 연극을 모두 무대에 올릴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 연희단거리패가 18년 동안 모은 8억원을 털어 지은 전용극장이다.

지난해 국립극단 예술감독으로 자리를 옮긴 이윤택씨는 “나는 이제 나이가 들어서 ‘관군’(국립극단) 소속이 됐으니 ‘게릴라’는 후배들에게 물려 주겠다”며 대표직을 내놓았다.

그래서 부산 가마골소극장과 밀양연극촌, 서울의 게릴라극장은 김경익(36) 남미정(36) 이윤주씨(31) 등 젊은 연출가 3명이 집단지도체제로 운영할 계획이다. 세 사람은 배우부터 연출가, 극장 운영까지 멀티플레이어 역할을 하고 있다. 2월 결혼한 이윤주씨는 아예 신방을 밀양연극촌에 꾸몄다.

전승훈기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