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사교육비 경감 대책의 하나로 발표한 교육방송(EBS)의 수능 방송과 인터넷 강의가 4월 1일 시작된다. EBS가 한국갤럽에 의뢰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수능 강의를 시청하겠다는 고교생과 EBS 방송이 실제 수능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응답한 학생이 전국적으로 70%가 넘었다. 학부모들과 학생들이 수능 방송에 큰 기대를 걸고 있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과연 강사진이 강의를 제대로 해낼지, 강의 내용은 충실할지, 그리고 산간지역이나 저소득층 학생도 이 방송을 제대로 시청할 수 있을지에 대해선 우려가 많다. 고교생만 해도 160만여명인데 동시접속 용량이 10만 회선뿐이라 ‘인터넷 대란’이 일어날 것이라는 불길한 예측도 있다. 기대와 바람이 실망과 분노로 바뀌지 않도록 하는 안전판이 마련돼야 한다.
특히 농어촌지역과 저소득층 학생들의 수능 방송과 인터넷 이용에 불편이 없어야 한다. 최근 고소득층 자녀가 서울대 사회대에 입학하는 비율이 저소득층 자녀에 비해 16배나 높으며, 그 격차가 더욱 벌어지고 있다는 조사도 있지 않은가. 또 농어촌지역 학생과 대도시지역 학생 사이의 격차도 확대되고 있다. 사회경제적 지위가 대물림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우리 사회는 ‘양반’과 ‘상놈’의 신분이 ‘부자’와 ‘가난뱅이’로 용어만 바뀌었을 뿐 신분제 사회로 되돌아가게 된다.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평등의 이념을 기초로 한 민주주의 사회가 뿌리째 흔들리게 되는 것이다.
물론 EBS의 강의 내용 위주로 수능을 출제하게 되면 고교 교육이 방송 강의에 의존하게 되고, 학생들의 창의적인 사고 능력과 정서 함양도 저해하는 등 여러 문제가 있다.
그럼에도 정부의 사교육 대책이 호응을 얻는 중요한 이유는 날이 갈수록 늘어 가는 사교육비의 고통과 부담을 덜어 주고 저소득층과 농어촌지역 학생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러나 그 소외계층 학생들이 수능 방송과 인터넷 강의를 제대로 들을 수 없다면, 이번 대책은 그들에게 오히려 더 큰 좌절과 절망을 안겨 주고 지역간 사회계층간 격차도 더욱 벌려 놓을 것이다.
바로 이것이 정부가 특별히 신경 써야 할 대목이다. 다른 부처도 이 일에 적극 동참해야 한다. 행정자치부, 문화관광부, 보건복지부 등도 수능 방송은 교육인적자원부 소관이라고 팔짱만 끼고 있지 말고 국가전산망, 문화의 집, 공부방, 방과후 학교 등을 최대한 활용해 소외된 학생들에 대한 사교육비 대책이 성과를 거두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번 사교육비 대책은 워낙 짧은 기간에 준비한 것이라 시행 과정에 문제점이 많을 수 있다. 시험 가동 기간이라는 변명에 급급하지 말고 회선 증설, 강의 내용 보강 등을 통해 보완에 최대한 노력해야 한다. 그것을 전제로 학부모, 학생과 교사들도 인내심을 갖고 문제 해결에 힘을 합쳐야 한다.
사교육비 문제는 워낙 그 뿌리가 깊고 사회구조적으로 여러 문제와 얽혀 있어 단기간에 몇 가지 대책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 시일이 걸리고 다소 시행착오도 불가피할 것이다. 이번 대책이 사교육비 경감, 나아가 해소의 성공적인 ‘첫걸음’이 되기를 기원한다.
정진곤 한양대교수·교육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