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의 선거법’이 선거운동 풍속도를 완전히 바꿔 놓고 있다. 선거관리위원회 직원이 선거캠프에 거의 상주하고, 밥 한 끼 얻어먹어도 50배의 과태료를 내야 하기 때문에 후보와 유권자 모두 극도로 몸조심 하는 ‘살얼음 선거’를 치르고 있는 것. 그러나 현장에선 “개정 선거법이 ‘선거 개혁’만 지나치게 강조하고 현실을 무시하는 바람에 새로운 편법과 탈법을 조장한다”는 불만의 목소리도 조금씩 터져 나오고 있다.》
▽선거 사무실은 유리 상자=27일 저녁 경기지역의 한 열린우리당 후보 사무실. 후보와 참모 5, 6명만 자리를 지키고 있어 선거캠프와 어울리지 않는 적막감마저 느껴졌다. 이들은 “왜 이렇게 조용하느냐”는 질문에 “사무실에선 마음 편히 할 수 있는 일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상대 정당에서 선관위에 추천한 선거감시단 2명이 하루 5시간 이상 사무실에 상주하기 때문에 몸조심할 수밖에 없다는 것. 한 참모는 “사실상 선관위의 폐쇄회로(CC)TV가 사무실에 설치돼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푸념했다.
서울지역에 출마한 모 정당의 후보는 “국가에서 선거보조금을 받으니까 선관위 감시를 받는 것은 당연하지만 선관위 직원들이 매일 찾아와서 ‘떡은 어디서 샀느냐. 우편물은 얼마나 발송했느냐’며 시시콜콜 조사를 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특히 선관위 내에서 업무 분담이 제대로 안돼 같은 사안을 놓고 이 팀 저 팀 번갈아 방문 조사하는 것은 시급히 개선돼야 한다고 이 후보자는 덧붙였다.
반면 선거사무실이 ‘유리상자’처럼 투명해지면서 선거 때마다 기승을 부리던 ‘선거 브로커’는 발붙일 곳이 없어지게 됐다.
부산 연제에 출마하는 한나라당 김희정(金姬廷) 후보측 관계자는 “지금까지 단 한 명의 브로커도 사무실에 방문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유권자들, “후보님 제발 밥값 내지 마세요”=‘과태료 50배 효과’가 대단하다.
한나라당 양천갑 지구당의 한 관계자는 “평소 개인적 친분이 있는 인사에게 ‘밥 한끼 같이 하자’고 무심코 얘기했다가 무안할 정도로 매몰차게 거절당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경기지역의 열린우리당 한 후보 캠프는 관내 인사로부터 “한번 만나자”는 연락이 오면 반드시 “밥값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라고 묻는다. 그러면 “밥 먹지 말고 사무실에서 차 마시며 얘기합시다”라고 하거나, 아니면 “밥값을 이쪽에서 부담하겠다”고 하는 경우가 대다수라고 한다.
서울 영등포갑의 민주당 김민석(金民錫) 후보측도 “식당에서 우연히 밥 먹고 있던 유권자들을 만나면 그들이 먼저 ‘거, 절대 돈 내지 마십시오. 잘못되면 우리가 50배 물어야 됩니다”라고 ‘경고’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나라당 서초갑 지구당 관계자는 “순수한 자원봉사자에게조차도 점심 한끼 줄 수 없게 한 것은 솔직히 너무했다”고 토로했다.
▽탈법 부르는 전화와 e메일 홍보=후보자들의 돈과 조직, 말까지 사실상 꽁꽁 묶어놓은 개정 선거법 아래에서 그나마 홍보 수단으로 적극 활용할 수 있는 것이 전화와 e메일.
그러나 서울 강북지역의 모 정당 후보는 “전화 홍보는 40, 50대 여성이 하는 게 가장 효과적인데 이들을 고용해 일당을 주는 것은 불법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상당수 후보자들은 관내 유권자의 e메일 주소를 확보하기 위해 인터넷쇼핑 회사 등으로부터 필요한 정보를 구입하거나 몰래 얻고 있는 실정이다. 이것도 현행법 위반이다.
박성원기자 swpark@donga.com
이승헌기자 ddr@donga.com
박민혁기자 mh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