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지구로 귀환하다 폭발된 미국의 우주왕복선 컬럼비아호. 몸통전체가 마찰열에 견디도록 특수 세라믹 타일로 덮여있는데 왼쪽 날개의 타일 일부가 손상돼 사고가 난 것으로 추정된다. 왼쪽 사진은 우리 연구진이 만든 10마이크로미터지름의 공기구멍. -동아일보 자료사진
치즈가 보관된 창고에 애벌레가 산다고 하자. 겨울을 무사히 나기 위해서는 추위를 효율적으로 피할 수 있는 집(치즈)을 선택해야 한다. 만일 구멍이 내부 곳곳에 뚫려있는 에멘탈 치즈와 사방이 꽉 막혀있는 보통 치즈 두 종류가 있다면 어디가 보금자리로 적합할까.
얼핏 생각하면 꽉 막힌 곳이 따뜻할 것 같지만 정답은 에멘탈 치즈다. 구멍의 공기가 다른 어떤 고체물질보다 열을 잘 전달하지 못하기 때문에 애벌레는 훨씬 따뜻하게 지낼 수 있다.
○ 애벌레의 생존법 응용
현대 신소재공학자들은 애벌레의 이런 지혜를 이용해 첨단소재혁명을 꿈꾸고 있다. 대표적인 연구 분야는 우주선 전체를 감싸는 특수 세라믹 타일에 공기구멍(기공)을 많이 집어넣는 일. 우주선이 지구로 귀환할 때 마찰열에 견디는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다. 얼마 전까지 기공의 크기는 머리카락 두께인 100마이크로미터 수준이었다.
지난해 2월 7명의 승무원을 태우고 대기권에 진입하던 미국 우주왕복선 컬럼비아호가 폭발한 참사가 빚어졌다. 원인은 세라믹 타일의 손상.
보통 우주왕복선이 지구 대기권에 진입할 때 공기와의 마찰 때문에 원추형의 앞부분은 섭씨 1400도, 날개와 몸통은 1100도까지 올라간다. 세라믹 타일은 이 엄청난 고온을 견디기 위해 왕복선의 표면에 붙여진다.
서울시립대 신소재공학과 김영욱 교수는 “세라믹 타일은 기공의 크기가 작을수록 그리고 기공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을수록 단열효과가 비례적으로 증가한다”고 말했다.
이 방면에서 한국의 기술은 세계 수준이다. 과학기술부 21세기프론티어연구개발사업의 일환인 ‘차세대소재성형기술개발사업’(단장 한유동)의 지원으로 3년만에 획기적인 기공제어기술이 개발됐다.
김 교수는 “기공 크기를 기존의 10분의 1인 10마이크로미터 수준으로 떨어뜨리면서 기공률을 90%까지 높였다”며 “현재 미국과 일본에 관련기술 4개를 특허출원 중인데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기술보다 우수하다”고 말했다. 이 정도면 단열효과를 두 배 이상 높일 수 있다.
그런데 소재에 구멍이 많으면 쉽게 부스러지지 않을까. 뼈에 구멍이 숭숭 뚫리는 질환인 골다공증을 떠올리면 의심이 가는 얘기다.
내부에 구멍이 뚫려 있는 에멘탈 치즈. 구멍의 공기가 열을 차단시키는 단열재 역할을 한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30일 사업단의 연구성과 전시회가 열린 서울 코엑스 건물에서 기공제어기술의 연구책임자 김해두 박사(한국기계연구원)는 “마이크로 세계에서는 기공이 일정 수준까지 많아져도 외부 충격에 대해 흡수 정도가 높아져 잘 파괴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그는 “기공이 일정한 방향성을 갖도록 바늘처럼 길쭉하게 또는 널빤지처럼 넓적하게 만들면 소재의 탄력이 커진다”고 덧붙였다. 세라믹 타일처럼 딱딱한 물질도 유연하게 휠 수 있다는 의미다. 비단 우주왕복선뿐 아니라 수많은 운석 조각들이 부딪쳐 흠집이 생기고 있는 국제우주정거장이나 인공위성 표면을 이런 특수 타일로 붙여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캐나다선 인공나무 연구
서구에서는 플라스틱에 구멍을 많이 내 인공나무를 만드는 연구가 한창이다. 캐나다에서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 토론토대 기계공학과 박철범 교수는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환경파괴로 자연산 목재가 품귀현상이 벌어져 플라스틱보다 비싸지는 추세”라며 “가공 후 버려지는 목재 부산물을 플라스틱과 섞어 나무처럼 만드는 연구가 각광받고 있다”고 말했다.
여기서 핵심은 기공을 적절한 크기와 양으로 발생시키는 일. 보통 플라스틱은 내부가 꽉 차있어 톱으로 자르거나 대패질을 할 때 힘이 모든 방향으로 분산돼 깨져버리기 십상이다. 하지만 물과 양분의 통로인 나무의 물관과 체관을 흉내내 기공을 만들면 일정한 방향으로 힘이 집중돼 가공이 가능해진다.
박 교수는 “개발 중인 인공나무가 모양과 질감 면에서 진짜 나무에 비해 손색이 없다”고 말했다.
김훈기동아사이언스기자 wolf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