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년 전인 1854년 3월 31일. 당시 일본의 집권세력 에도(江戶)막부는 미국의 개항 요구에 굴복해 쇄국정책을 거둬들이고 미일화친조약을 체결했다. 미국 동인도함대 사령관 페리 제독이 1853년 7월 군함을 이끌고 에도만(현 도쿄만) 앞바다에 나타나 무력시위를 벌인 지 8개월 만의 일이었다. 150년이 지난 지금, 미국과 일본은 어느 때보다 찰떡같은 관계를 보이고 있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는 “미일 양국이 역사상 이렇게 좋은 관계를 유지한 적은 없다”고 자부하고 있다.》
▽‘최상의 미일관계’…빛과 그림자=“미국 국민과 일본 국민은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음악을 듣고, 같은 패션의 옷을 입고 있다. 우리는 이제 같은 팀이 됐다.”
하워드 베커 주일 미국대사는 최근 고이즈미 내각의 e메일 레터 영문판에 기고한 글에서 “미일관계가 지금처럼 좋았던 때는 없었다”고 강조했다.
1980년대 한때 양국 관계를 긴장시켰던 통상마찰도 일본 경제가 위축되면서 잠잠해졌다. 미국은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등에 대한 경제적 지원을 기대하며 ‘일본 치켜세우기’에 열심이다. 부시 대통령은 지난해 5월 고이즈미 총리를 개인 목장에 초대한 데 이어 중앙정보국(CIA)의 ‘인텔리전스 브리핑’에 동석시키는 제스처로 밀월관계를 과시했다.
일본도 국제사회의 눈총에 아랑곳 않고 미국의 이라크 공격을 개전 초부터 일관되게 지지했다.
하지만 일본의 지식층은 ‘미국은 일본에 요구만 할 뿐 일본의 말을 경청하지 않는다’는 불만을 갖고 있다. 이런 기류는 일본이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 공을 들인 이란의 아자데간 유전 개발에 대해 미국이 제동을 걸면서 더욱 확산됐다.
정상들은 개인적 우정을 자랑하지만 양국 국민의 신뢰도는 오히려 떨어졌다. 지난해 11월 미국 갤럽과 일본 요미우리신문이 실시한 공동 여론조사에서 ‘상대방 국가를 신뢰한다’는 응답은 미국이 71%로 1년 전보다 7%포인트, 일본은 41%로 8%포인트 하락했다.
▽‘일본을 동아시아의 군사대리인으로’=영토 분쟁을 빚는 센카쿠(尖閣)열도에 중국인들이 상륙한 문제로 중국과 일본이 마찰을 빚자 미 국무부 관리는 24일 “센카쿠열도에도 미일안보조약이 적용된다”고 말했다. 이 문제로 군사적 충돌이 발생하면 미국은 일본 편을 들 것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최근 미일간의 밀월이 가장 두드러진 분야는 군사동맹이다. 전문가들은 미국이 전력 재배치로 생기는 동아시아의 군사력 공백을 ‘세계 5대 군사강국’이자 확실한 동맹국인 일본이 메워주기를 바라고 있다고 분석한다.
미 정부가 워싱턴에 있는 제1군단 사령부를 일본으로 옮기자고 제안한 것이 대표적인 예. 미사일방어(MD) 체제를 공동 개발하고 자위대와의 합동 군사훈련에 나서는 것도 중국을 견제하는 수단으로 일본을 활용하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일본 우파는 미국의 의도를 내심 반기면서 재무장의 호기로 여기고 있다.
미야자와 기이치(宮澤喜一) 전 총리는 “중일관계가 미일관계처럼 중요해지는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며 미국 일변도 외교를 경계했지만 대세를 막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일본을 동아시아의 대리인으로 삼으려는 미국과 기꺼이 책무를 떠맡으려는 일본. 150년을 지속한 미일 교류는 새 국면을 맞고 있다.
▽풍요 낳은 150년 전 만남 자축=2002년 기준으로 미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3만5060달러로 세계 6위, 일본은 3만3550달러로 7위다. 두 나라는 지구촌 국내총생산(GDP)의 45%를 차지한다. 일본의 외환보유액은 7800억달러로 세계 1위.
양국 정부는 현재의 풍요를 가능케 한 150년 전의 인연을 기념해 다양한 행사를 갖는다.
31일 워싱턴에서 열리는 미국측 기념식에서는 미국 정부가 조약 체결의 의미를 되새기는 차원에서 일본에 미일화친조약 문서의 복사본을 증정한다. 일본측 원본은 막부시대 말기 화재로 소실됐다.
다음달 3일 조약 체결지인 요코하마(橫濱)에서 열리는 일본측 기념식에서는 고이즈미 총리가 양국 우호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부시 대통령이 영상 메시지를 통해 축하할 예정이다.
도쿄=박원재특파원 parkw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