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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MBC TV편파 논란]野패러디물 방송하며 비난성 자막

입력 | 2004-03-30 18:48:00

28일 밤 같은 시간대에 방송된 KBS 1TV의 ‘취재파일 4321’(오른쪽)과 MBC TV의 ‘시사매거진 2580’. KBS는 한나라당을 건전지 병렬연결에 비유한 패러디를, MBC는 야당을 부정적으로 묘사한 인터넷 뉴스 패러디 ‘헤딩라인 뉴스’를 여과없이 방영했다. -KBS와 MBC TV 화면 촬영


최근 방영된 KBS 1TV ‘취재파일 4321’(일 밤 9·40)과 MBC ‘시사매거진 2580’(일 밤 9·45), ‘신강균의 뉴스 서비스 사실은…’(금 밤 11·15) 등 시사 프로그램들이 총선을 앞두고 야당에 불리한 화면을 집중적으로 내보낸 것으로 나타났다.

이 프로그램들은 야당 의원을 풍자한 패러디를 인터넷에 올린 이들과 촛불시위 주도자에 대한 정부의 사법처리 방침에 관해 실정법의 부당성만 일방적으로 주장해 형평성을 잃었을 뿐 아니라 방송이 ‘다수의 이름’으로 탈법을 조장하고 있다는 지적마저 듣고 있다.

▽“야당만 아니야?”=KBS는 28일 ‘취재파일 4321-정치 표현 어디까지’에서 촛불시위 주도자와 인터넷 패러디 사이트에 대한 사법처리 문제를 다루면서 야당에 불리한 내용을 부각시켰다.

이 프로그램은 촛불시위 참가자들이 일명 ‘탄핵송’으로 알려진 ‘너흰 아니야’를 부르는 장면을 비추면서 진행자 멘트로 “선거법 위반시비를 우려해 노래 어디에도 비판하는 정당의 이름은 나오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방송에서 전한 가사는 당 이름이 들어가야 할 대목이 개 짖는 소리로 대체됐을 뿐 ‘개 같은 세상… 그래도 너흰 아니야… 차떼기로 갈취하는 조폭들…’이라고 돼 있어 이 노래의 표적이 한나라당임을 쉽게 알 수 있도록 했다.

‘취재파일 4321’은 최근 정치인 비난 패러디물을 인터넷에 올려 선거법 위반 혐의로 체포된 대학생 권모씨(21)를 다루면서 문제의 글과 합성사진을 여과 없이 내보냈다. 권씨가 부정적으로 패러디한 이들은 모두 야당 의원이었다.

이 프로그램은 한나라당을 건전지의 병렬연결에 비유한 패러디를 방송하면서 ‘병렬연결의 특징’ ‘한 명이나 여러 명이나 밝기는 같다’ ‘낭비가 심하다’ 등의 자막을 곁들였다.

MBC가 같은 날 비슷한 시간에 방영한 ‘시사매거진 2580-인터넷 여론 광장 여론’도 인터넷에서 떠돌고 있는 뉴스 패러디 ‘헤딩라인 뉴스’를 소개하면서 야당에 불리한 내용을 내보냈다. “서정우 감사원장(이회창 전 한나라당 대선 후보의 법률고문)이 올해의 청백리상을 수상했다” 등이었다.

장영수(張永洙) 고려대 법대 교수는 “야당을 비난하는 패러디물이 많은 현실에서 기계적 형평은 어렵겠지만 특정 정당을 비난하는 내용만 소개한 것은 편파적”이라고 지적했다. 김우룡(金寓龍) 한국외국어대 언론정보학부 교수는 “적나라하고 질 낮은 정치 풍자를 여과 없이 보도해 방송의 품위를 훼손한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다수라면 법도 무시=‘취재파일 4321’은 선거관리위원회나 경찰이 인터넷을 통한 패러디물 유포자를 사법처리하기로 한 데 대해 실정법의 부당성을 부각시켰다.

패러디 유포자나 학자, 인터넷 사이트 운영자 등 6명이 모두 3분18초간 사법처리가 부당한 사유를 설명한 반면, 사법처리의 근거에 대해서는 경찰청 사이버테러 대응센터 팀장 한 명이 나와 37초간 발언했을 뿐이다.

27일 0시반 방영된 MBC ‘신강균의 뉴스서비스 사실은…’은 ‘광장의 주인은 시민이다’ 편에서 진행자가 여중생 추모 촛불시위를 주도한 사람들이 구속된 것을 예로 들며 “우리나라의 시위문화를 한 단계 올린 평화적 시위였다고 평가받고 있는데, 저런 시민들의 집회까지 처벌하는 법은 정말 문제가 많다”고 말했다.

이 프로그램은 또 4·19혁명, 80년 광주민주화운동, 87년 6월항쟁의 당시 화면 등을 보여주며 탄핵반대 촛불시위를 이들과 동일선상에 놓고 정당성을 주장했다.

이 같은 프로그램에 대해 KBS, MBC, 방송위원회의 인터넷 게시판에는 항의 글이 이어졌다.

이지연씨는 ‘신강균…’에 대해 “현행법상 불법임에도 마치 다수가 모여 하는 시위인 만큼 법을 고쳐 합법화하면 된다는 식으로 시위를 부추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봉준씨는 “다수의 국민 의견이 법을 앞선다는 이론을 내세우니 법보다 주먹이 앞서는 것과 무엇이 다르냐”고 했고, 박희석씨도 “국회 다수는 횡포이고, 백성들의 다수는 진리라는 말인가”라고 반문했다.

제성호(諸成鎬) 중앙대 법대 교수는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가 만든 현행법의 테두리를 넘어 자기들의 잣대로 사안을 평가한다면 그 자체가 반민주적 행위”라며 “촛불시위 주도자들은 국민 의사를 반영한다는 명목하에 여론 독재를 하고 있고, 방송은 편파보도로 시청자들의 객관적이고 자율적인 판단을 가로막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진영기자 ecolee@donga.com

김선우기자 sublime@donga.com

KBS 1TV '취재파일 4321'에서 인터넷 패러디물 사법처리 의견 비교사법처리 반대 (3분18초)사법처리 찬성(37초)-“시대를 따라가지 못하는 법을 고치는 것이 나라의 녹을 먹는 xx들의 책무다”(패러디송 작곡가 윤민석씨)-“표현의 자유가 박탈된다고 생각했다”(패러디물로 긴급 체포된 권모씨)-“선관위나 사법당국의 잣대가 없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다” (김태일 라이브이즈 닷컴 대표)-“이 플래시 하나로 긴급 구속하는 것이 이해가 안 된다” (이현성 패러디 제작자)-“표현의 자유 세대를 낡은 법과 관행으로 억압하겠다는 것은 시대의 변화를 억누르는 것이다”(홍성태 상지대 교수)-“미국에서는 패러디를 문제 삼지 않는다” (안병진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선임연구원)-“온라인 불법 선거가 계속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고 단속 건수와 위법한 사람의 수도 늘고 있는 실정이다” (경찰청 양윤교 사이버테러 대응센터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