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의사로는 처음 국제 공인 정신분석가 자격을 따낸 정도언 교수는 “앞으로는 정신분석가를 배출할 교육분석가가 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김미옥기자
“정신분석은 마음에 병이 있는 사람만 받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누구인지 스스로 객관적으로 보길 원한다면 한번쯤 시도해볼 만합니다.”
국내 의사로는 처음으로 국제정신분석학회 공인 정신분석가 자격을 취득한 서울대병원 신경정신과 정도언 교수(52)는 정신분석이 결코 정신질환자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일반인에게도 대인관계에서 생길 수 있는 문제를 헤쳐 나가고 삶의 어려움을 견딜 수 있는 지혜를 제공해준다는 것.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1908년에 창립한 국제정신분석학회는 세계정신분석학의 메카로 불릴 만큼 정통성을 자랑한다. 회원이 1만4000여명이나 되지만 아시아 지역 회원은 겨우 20여명에 불과할 만큼 문턱이 높다. 하지만 정 교수와 홍택유 홍신경정신과 원장(50·전 울산대 의대 교수)이 10일 국내에서는 최초로 회원 자격을 취득해 한국정신분석학의 위상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정신분석은 특히 무의식을 탐구하는 학문이자 치료법이다. “내 마음 나도 모르는 것이 무의식 세계죠. 이 속엔 어려서부터 키워 온 갈등 소망 욕구 등이 가득 차 있습니다. 정신분석은 이런 무의식 세계 속에 있는 갈등을 끄집어 내 환자에게 보여줘 깨닫게 하는 과정입니다.”
그러다 보니 정신분석은 정교함을 요하는 작업이다. 환자의 말을 근거로 무의식 속의 갈등을 들여다봐야 하므로 깐깐하지 않으면 놓치기 십상이다. 또 은근과 끈기가 필요하다. 3년 이상 긴 치료 과정이 필요한 경우도 허다하다.
정 교수는 여기에 딱 맞는 성격을 가졌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그는 한마디로 ‘결벽주의자’다. 신문이나 잡지에 칼럼을 쓰면 오자(誤字) 하나 없고, 주문받은 원고량을 자수까지 정확하게 맞추는 것으로 유명하다. 더욱이 그는 의대 시절부터 정신과 전공의를 대상으로 하는 각종 정신분석 세미나에 참석할 만큼 정신분석에 대한 열정이 그 누구보다 큰 사람이다.
그런 그도 정신분석 자격을 취득하기까지는 쉽지 않은 과정을 거쳐야 했다. 그는 1988년부터 2년간 미국 샌디에이고 정신분석연구소에서 최초의 한국인 수련생이 돼 일주일에 4번, 한번에 45분씩 총 400회에 달하는 혹독한 정신분석 수련을 받았고, 그 뒤에도 10여년에 걸쳐 보완 수련을 거쳤다.
수련의 대부분은 자신에 대한 분석. 환자를 객관적으로 바로 보려면 정신분석가 자신의 무의식 속에 억압된 각종 갈등이 없어야 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정신분석가가 과거에 다른 사람에게서 경험한 내용을 환자에게 투사시켜 치료가 어렵게 된다.
“감추고 싶은 일들을 스스로 드러낸다는 게 쉽지 않더군요. 전 원래 글쓰기에 취미도, 자질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정신분석 수련을 끝낸 뒤 글 쓰는 실력이 많이 늘었습니다. 내 마음 속에 억압됐던 창조성이 자유로워지면서 나 자신을 표현하는 데 대한 두려움이 없어졌기 때문인 듯합니다.”
그에게 최근 우리 사회의 탄핵 갈등 등에 대한 ‘정신분석적 해석’을 요청했다. 이분법적인 사고가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었다.
“요즘 사회를 보면 마치 히스테릭한 여성 환자를 보는 느낌입니다. 히스테릭 여성의 특징은 흑과 백 외에 회색이라는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분법적인 사고는 갈등을 불러일으키기 마련인데, 갈등은 원래 파괴적인 에너지를 갖고 있어 서로가 상처를 입게 됩니다. 상대에게도 좋은 점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됩니다.”
정 교수는 국내 정신분석학도 곧 환자 개인뿐 아니라 정치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까지 일조할 수 있을 만큼 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내년쯤에는 국제 공인 정신분석가가 2명 더 배출될 것이고 4, 5년만 지나면 국내에도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정신분석연구소가 생길 겁니다. 또 정신분석가를 훈련시킬 교육분석가도 나올 겁니다. 그렇게 되면 정신분석학이 우리 사회의 갈등구조를 푸는 데에 의미 있는 기여를 할 수 있을 겁니다.”
이진한기자·의사 liked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