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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철칼럼]신념은 부끄럽지 않다

입력 | 2004-03-31 18:39:00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가 쫓겨나듯이 대표직을 사퇴한 데 이어 민주당 조순형 대표도 궁박한 처지에 몰렸다. 조 대표가 대표직은 유지하되 일선에서 물러서는 선에서 봉합되는 듯했던 내분은 더욱 증폭되는 분위기다. 최 대표는 취임 9개월 만이고, 조 대표는 4개월을 겨우 채웠다. 이것이 ‘시대의 흐름’인가. 한국 정치의 호흡이 너무 짧아졌다는 생각이 든다.

▼암울한 총선에 요동 ▼

두 당의 사연은 다른 듯하면서 실은 같다. 한나라당은 두 차례 대선 패배 후에도 수구적 이미지의 구각(舊殼)을 벗지 못한다는 안팎의 세찬 비판을 받아온 데 이어 서청원 의원 석방과 노무현 대통령 탄핵 역풍에 휘말려 침몰 중이다. 조 대표의 등장으로 한때 상승세를 누렸던 민주당은 탄핵과 함께 한-민 공조라는 비난 화살을 맞고 역시 추락 중이다. 그러나 보다 꼼짝없이 몰리게 된 현실적인 공통 원인은 암울해진 총선 전망이다. 대통령 탄핵 역풍으로 곤두박질한 지지도로는 도저히 선거를 치를 수 없다는 당내 아우성을 막아낼 재간이 없기 때문이다. 결국 대표를 포함한 지도부를 바꾸고, 새 인물을 전면에 내세워 악화된 여론을 진정시킬 수 있다면 의회 진출 기회가 보다 많지 않겠느냐는 의견이 대세를 이룬 것이다. 코앞에 닥친 선거에서 낙선이 눈에 뻔히 보이는 정치인에게는 절체절명의 사건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이 정치판의 현실이다.

삭발하고 단식한 이들의 모습에 처절한 느낌도 든다. 그럼에도 나는 생각을 달리한다. 구경꾼 입장에서 속 편한 소리한다고 할지 모르지만, 탄핵 소리만 나오면 피하는 듯한 모습을 보면, 솔직히 말해서 씁쓸하다. 지도부를 갈아치우고, 당사를 옮기고, 당 로고를 바꾼다고 ‘탄핵 찬성’이 ‘탄핵 반대’가 된다고 믿지는 않으리라고 본다. 국회의원 재적 3분의 2 이상이 찬성한 탄핵은 엄연히 헌정사상 처음으로 일어난 사건이요, 탄핵 찬성 193표, 반대 2표는 지울 수 없는 역사의 기록이다. 애당초 누군들 탄핵안이 가결되리라고 선뜻 예상했는가. 냉정히 보자. 그것이 ‘정치’다. ‘정치는 가능성의 예술’이라 했다. 그런데 헌법재판소에까지 버젓이 올려놓고는 웬 뒷걸음질인가. 역풍은 결과에 대한 별개의 문제다. 예전 같으면 탄핵안 통과 후 정작 난리가 났을 곳은 열린우리당이다. 여당이 어떻게 했기에 대통령이 탄핵당하는 지경에 이르렀느냐는 비판과 함께 당 지도부에 대한 책임론이 들끓었을 것이다. 그런데 몸으로 막고, 의사당 기물을 던지고, 비분강개하며 의원직 사퇴를 선언하는 장면에서 여론이 움직이면서 상황은 뒤바뀌었다(의원직 사퇴는 후에 절 한 번 하고 뒤집었다). 이것도 ‘시대의 흐름’인가.

정당이 여론을 무시하거나 외면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정당에는 나름의 정치적 원칙이 있어야 하고 그에 따른 여론 설득이 필수적이다. 여론에 따라 갈팡질팡하는 정당이라면 정체성을 무엇이라고 설명하겠는가. 구차스럽게 살아남은들 그런 정파가 오래갈 수 있겠는가. 그래서 하는 말인데, 총선에서 한나라당과 민주당, 자민련은 탄핵 찬성에 대한 심판을 피할 수 없다. 또 피하려 해서도 안 된다. 오로지 당선되겠다는 욕심에서 응급처방식 편법이라도 마다하지 않겠다면 그것은 자기부정이요, 원칙을 저버리는 것 아닌가. 당당히 심판받는 것이 자기 행동에 책임지는 자세요, 정치인의 길이다. 그리고 총선이 어디 탄핵규탄만인가. 선거구와 사회 발전을 위한 청사진을 밝힐 일들이 한두 가지인가. 유권자의 시각은 다양하고 독특한 데가 있다. 고배를 든다 해도 패인을 자신의 설득력 부족으로 돌릴 일이다.

▼‘용기 있는 사람들’ ▼

지금의 추세라면 열린우리당의 압승 속에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의석 전망은 밝지 않다. 지역구 몇 석을 더 건질지 모르지만 정치적 소신과 궤적을 수정한 결과라면 잃는 것이 더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소신을 지키려다 당하는 패배는 부끄럽지 않다. 신념을 지키겠다는 이 땅의 ‘용기 있는 사람들’을 찾고 싶다. ‘죽는 것이 사는 것(死卽生)’이란 긴 호흡의 정치를 보고 싶다. 그것은 또 다른 ‘시대의 요구’다.

최규철 논설주간 kih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