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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인]女風당당 “人生홈런 칠래요”…여자야구 ‘비밀리에’팀

입력 | 2004-04-01 16:01:00

그들은 야구를 사랑한다. 그리고 이제 야구를 한다. 한국 최초 여자야구단 ‘비밀리에’가 지난달 21일 첫발을 내디뎠다. 윗사진 아랫줄 맨 오른쪽이 안향미씨. 이종승기자 urisesang@donga.com


《회사원 장현주씨(23·여)는 중학교 3학년이던 1996년 봄 TV에 나온 한 중학생 여자 야구선수의 모습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다음날 장씨는 그 여자 선수에게 편지를 썼다. ‘네가 부러워. 나도 야구를 하고 싶었어. 응원 열심히 할게.’

그 선수는 당시 중3이었던 안향미씨(23). 남학생 틈바구니 속에서 힘들게 야구를 하던 그에게 장씨의 편지는 큰 위안이었다. 안씨는 한국 최초이자 유일한 여자 야구선수다. 대한야구협회에 공식으로 등록된 최초의 선수였다. 덕수정보고 3학년 때는 전국대회에 투수로 출전하기도 했다. 이후 안씨와 장씨는 전화와 편지로, 때로는 만나서 야구를 이야기했다. 그리고 8년이 흐른 지난달 21일 두 사람은 한국 최초의 여자야구단 ‘비밀리에(Bimylie)’를 창단했다. 1905년 한국 최초로 ‘황성YMCA야구단’이 생긴 지 100년째 되는 해였다.》

○ ‘야구계의 혹’

안씨는 자신을 ‘한국 야구계의 혹’이라고 부른다. 남자만의 야구계에서 유일한 여자선수로서 느낀 것이다. 중학교에서 선수 등록을 하려 할 때, 고교를 졸업한 뒤 대학과 프로 모두 자신을 야구선수로 받아주지 않았을 때, 미국 여자야구팀에 가려고 갖은 애를 썼지만 비자를 받을 수 없었을 때 기성 야구계는 큰 힘이 되지 못했다.

안씨는 2002년 일본 도쿄의 여자 사회인 야구팀 ‘드림 윙스’에 들어갔다. 유학비자를 받아 대형 마트에서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했다. 팀 동료들은 ‘일본에서 계속 야구를 하라’고 했지만 안씨의 꿈은 한국에서 여자 야구팀을 만드는 것이었다.

지난해 10월 동생을 시켜 인터넷 포털사이트 ‘다음’에 ‘여인천하’라는 여자야구 카페를 만들었다. 장씨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게시판에는 ‘야구를 하고 싶다’는 글들이 올라왔다. 연락처를 남긴 회원들에게 안씨는 생활비를 줄여가며 국제전화를 걸어 독려했다.

그리고 12월 안씨는 한국으로 돌아왔다. 회원이 모이기로 한 날이었다. 그러나 모인 사람은 단 3명. 축 처진 어깨로 돌아가는 안씨를 “잘될 거야”라며 위로한 사람은 장씨였다.

올해 1월 장씨와 회원 4명은 서울 용산고 운동장에서 첫 연습을 했다. 눈 덮인 운동장을 달리고 인터넷에서 찾은 스트레칭법으로 몸을 풀었다. 야구 글러브도 공도 없었다. 경기하러 온 사회인 야구팀에서 글러브와 공 10개를 빌려 처음으로 ‘캐치볼’을 하며 감격했다. 남영역 근처 야구 연습장에서 500원을 내고 피칭머신의 공 15개를 치며 타격 연습을 했다.

2월 15일 안씨의 중학교 시절 코치였던 김억초씨(35·현 경원중학교 코치)에게 부탁해 경원중 실내연습장에서 연습을 시작했다. 이후 매주 일요일 5시간의 매운 훈련이 이어졌다. 회원도 14명까지 불어났다. 팀을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다.

○ Baseball Is My Life

배팅연습을 하는 장현주씨. 이종승기자

‘비밀리에’라는 팀 이름은 장씨의 작품이다. 팀 이름을 고민하다 문득 ‘Baseball Is My Life(야구는 내 인생)’라는 문장이 떠올랐다. 각 단어의 앞 글자들을 조합했다.

장씨는 3세 때 부모 품에 안겨 잠실야구장에서 프로야구 한국시리즈를 본 것을 기억한다. 초등학교 때는 리틀야구단에 가입하고 싶었지만 부모님은 허락하지 않았다. 안씨를 만나며 야구에 대한 짝사랑은 더욱 깊어졌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사회인 야구팀에 가입했다. 선수들 곁에서 기록원으로 열심히 일했다.

지난달 21일 서울 덕수정보고 실내연습장에 모인 ‘비밀리에’ 창단 멤버들도 대부분 장씨와 비슷한 기억이 있다. 야구를 하고 싶었지만 팀이 없어 축구, 소프트볼, 테니스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드디어 야구를 할 수 있게 됐다. 관람석에서 응원만 하던 회사원, 미용사, 아르바이트생인 그들이 공을 던지고 방망이를 휘두르고 있었다.

이날 김 코치가 던져주는 볼을 알루미늄 방망이로 쳐내는 선수들의 손에는 금방 물집이 잡혔다.

캐치볼을 하는 선수들은 공을 놓치기 일쑤였다. 그래도 그들은 웃었다.

야구의 무엇이 이들을 사로잡은 것일까.

안씨는 “너무 힘들어서 손을 놓고 있으면 (야구가) 생각나고 하고 싶어 미치겠다”고 했다. 그들도 그냥 야구가 좋다고 했다.

○ ‘비밀리에’의 미래

올해 6월 캐나다 에드먼턴에서는 제4회 세계여자야구선수권대회가 열린다. 미국, 캐나다, 일본, 호주가 참가 신청을 했다. 미국은 이미 1943년 여자프로야구팀을 만들었다. 일본도 49년에 여자프로팀이 생겼다. 지금은 사회인팀 70여개, 대학팀 30여개가 리그전을 벌인다.

안씨의 꿈은 비밀리에를 이끌고 세계대회에 나가는 것이다. 물론 실력 차이는 엄청나다. 현재 여자야구의 세계수준은 한국 중학교 대표팀 내지는 고등학교 약체 팀 실력이라고 본다. 반면 비밀리에는 앞으로 1년 동안 꾸준히 연습하면 국내 초등학교 팀과 경기를 할 수 있을 정도다.

세계대회를 나가는 것도 좋지만 야구 자체를 즐기자고 생각하는 팀원들도 있다.

장씨는 “사회인팀 선수들 중에는 결혼해서 가족을 데리고 나오는 경우가 많다. 아내는 남편이 경기하는 모습을 비디오카메라에 담고 같이 점심을 먹는다.나도 나중에 남편과 아이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야구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문적인 야구선수가 되든, 하나의 동호회로 남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미 그들은 야구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야구는 소녀와 소년도, 어느 누구도 할 수 있다. 특별히 크거나, 힘이 세거나, 빠르지 않아도 괜찮다.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지도 않다. 군중, 함성, 땀, 동지애 그리고 뜨거운 햇살의 한 부분이 되려는 욕망만 있으면 된다.” (바틀렛 지아마티·70, 80년대 미국 예일대 총장, 프로야구 내셔널리그 회장)

민동용기자 min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