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경기 여주군 임필봉씨의 비닐하우스에서 주부 홍명희씨(왼쪽)가 친환경 채소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여주=하임숙기자
경기 성남시 분당구에 사는 주부 홍명희씨(30)는 아토피성 피부염이 있는 여섯 살배기 딸 때문에 먹을거리에 여간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 친환경 야채 코너를 애용하지만 이것도 과연 믿을 만한가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
안전한 먹을거리에 관심이 많은 주부의 한 사람으로서 홍씨는 기자와 함께 지난달 30일 친환경 채소가 생산 유통 납품되는 과정을 직접 추적해봤다. 찾아간 곳은 이마트에 친환경 채소를 납품하는 농가 가운데 수경재배를 하는 곳. 현재 국내에 유통되는 친환경 농산물은 전체 농산물의 10% 정도다.
▽무농약 무비료 수경재배=서울 세종로에서 차로 2시간을 달려 도착한 곳은 경기 여주군 점동면에 있는 임필봉씨의 비닐하우스. 1500평 비닐하우스에서 임씨는 쑥갓, 적근대 등 19종의 채소를 땅 대신 물에 심어 키우고 있다. 물은 영양액이 섞여 있으며 썩지 않도록 산소가 계속 공급된다.
비닐하우스 안에서는 일꾼들이 모판의 어린 야채를 물판으로 옮겨 심고 있었다. 야채들은 고른 잎사귀를 달고 벌레 먹은 흔적도 없이 싱싱하게 자라고 있었다.
“농약이나 화학비료를 쓰는 이유가 벌레 먹지 않고 크게 자라도록 하기 위해서인데 친환경 야채의 겉모양이 일반 야채보다 더 좋으니 좀 의아하네요.” 홍씨가 물었다.
이는 친환경 농가의 딜레마이기도 하다. 친환경 야채를 찾는 소비자들이라면 썩은 사과도 기꺼이 사야 하지만 굵고 보기 좋은 사과만 찾는 게 현실. 이에 따라 친환경 인증을 받은 농가들은 벌레 먹은 야채나 과일 등 생산량의 약 40%를 버리거나 농약 또는 화학비료를 조금씩 쓰는 일도 있다고 한다. 임씨는 “수경재배를 하면 땅에서 키우는 것보다 벌레가 덜 생기고 만일 벌레가 생기면 잎을 따서 버린다. 여름에는 40일, 봄가을에는 2개월 만에 채소가 자라고, 다 자란 채소는 3개월 동안 계속 수확할 수 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신세계 상품과학연구소의 한 연구원이 깻잎 부추 등 야채에서 추출한 농약의 양이 적정한지 검사하고 있다. 하임숙기자
▽연구소에서 농약 검사=수확된 채소는 냉동차로 10분을 달려서 저장고로 간다. 8∼13도의 냉장고에 저장해야 채소가 늦게 시든다.
채소는 저장고에서 이마트 각 매장으로 나간다. 아침에 딴 것은 오후에, 저녁에 딴 것은 다음날 아침 매장에 진열된다. 남은 채소는 매일 ‘땡처리’되거나 폐기처분된다는 게 이마트 야채팀 바이어 장봉기 과장의 설명.
야채의 일부는 서울 중구 장충동의 신세계 상품과학연구소로 전달된다. 유통업체들은 팔린 물건에 대한 최종 책임자이므로 자체 검사를 통해 상품의 질을 보장하려고 애쓴다. 신세계의 경우 농가와 직접 계약한 친환경 야채는 석 달에 한 번, 서울 송파구 가락동 농산물시장에서 사오는 일반 야채는 매일 일부를 연구소로 보내 검사한다.
연구소에 들어서니 한 연구원이 6개의 유리 플라스크에 깻잎, 돌나물, 냉이, 부추 등에서 추출한 농약을 넣고 잔류 농약 검사를 하고 있었다.
이근배 소장은 “30분이면 농약이 기준치를 넘는지 알 수 있고, 이때 문제가 되면 자세한 검사에 들어간다”고 설명했다.
만일 기준치 이상의 농약이 나오면 매장으로 연락해 판매를 중지한다. 이마트는 3년 전 친환경 야채에서 기준치 이상의 농약이 나와 바로 판매를 중지하고 거래를 중단한 적이 있지만 그 후엔 한 번도 그런 일이 없었다고 한다.
친환경 농산물의 종류종류기준저농약 농산물농약 뿌리는 횟수와 잔류농약이 안전기준의 절반 등 무농약 농산물무농약, 화학비료는 권장량의 3분의 1무농약 농산물(양액재배)수경재배. 무농약, 무화학비료 재배전환기 유기농산물1년 이상 무농약, 무화학비료 재배유기 농산물2∼3년 이상 무농약, 무화학비료 재배
여주=하임숙기자 artemes@donga.com
○“일반채소라도 잘 씻으면 농약 크게 줄어”
홍명희씨는 이날 일정을 마친 뒤 “친환경인증을 받았다고 해서 100% 믿을 수는 없지만 그나마 나으니 지금처럼 친환경 채소를 사야겠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친환경 채소는 일반 채소보다 값이 2배 이상 비싸 주부들이 선뜻 사기가 쉽지 않다. 신세계 상품과학연구소 이근배 소장은 “일반 채소라도 제대로만 씻어 먹으면 농약 함유량을 크게 낮출 수 있다”고 설명했다. 어떤 농약은 100%까지 물에 씻겨 나가기 때문. 채소나 과일을 사면 일단 깨끗한 물에 5분 정도 담가둔다. 농약이 물에 녹아 나온다. 이때 소금물을 쓰면 삼투압 작용 덕분에 농약 나오는 속도가 더 빨라진다.
다음으로 흐르는 물에 30초가량 문질러 씻는다. 이렇게 하면 채소류는 평균 55%, 과일류는 40%가량 농약이 제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