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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한국 종교인에게 듣는다]이성희 목사

입력 | 2004-04-01 19:56:00

이성희 목사는 “개인에게도 보수와 진보 성향이 섞여 있어 한쪽을 버릴 수 없는데 하물며 사회에서는 더 말할 필요가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변영욱기자


“상대를 죽이고 나만 사는 법은 없습니다. 상대를 껴안아야 나도 제대로 살 수 있지요.”

서울 종로5가 연동교회 이성희 목사(56)는 상대를 망하게 하고 내가 사는 ‘루즈-윈(Lose-Win)’은 결국 둘 다 망하는 ‘루즈-루즈(Lose-Lose)’가 된다고 역설했다.

이 목사는 보수교단(예수교장로회 통합) 소속이나 개신교 내 진보 진영에서도 인정받는 목회자 중 한 명이다. 그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와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의 통합을 위한 실무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그는 ‘탄핵정국’으로 흑백논리가 횡행하는 것을 경계하면서 서로 껴안고 사는 ‘윈-윈’의 자세를 촉구했다. 이번 탄핵 파문도 ‘상대를 배척하는 자세’에서 비롯됐다고 지적했다.

“정권을 잡은 대통령은 꼭 신당을 만들었습니다. 정권을 잡는 과정에서 자신을 지지하지 않은 사람을 배제한 것이죠. 열린우리당도 그런 것 아닙니까. 그 결과 거대 야당이 등장해 대통령직 수행이 더 힘들어졌어요. 거대 야당도 마찬가집니다. 대통령을 배제시키겠다고 탄핵소추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상대를 끌어내리자는 거대 야당의 무모함이 국민의 공분을 일으킨 것이죠.”

이 목사는 흑이 있어야 백이 더 희게 보이고 백이 있어야 흑이 더 검게 보이는 것처럼 서로의 필요성을 인정하자고 말했다. 또 흑과 백 사이에 3000개나 되는 회색의 존재를 잊어서는 안 된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는 교계에서 21세기형 목회자로 손꼽힌다. 평신도 중심의 교회를 만들고 정보화 시대에 맞는 합리적 리더십을 창출했다는 평도 듣는다. 그는 정보화 사회를 반영하는 통합적 리더십의 부재가 혼란을 더 부추긴다고 지적했다.

“산업사회의 구조는 상명하달식 체계로 고효율과 고성장을 이끌었습니다. 이때는 카리스마적 리더십이 작용했어요. 하지만 정보화 사회는 거미줄(web)처럼 짜여 있습니다. 정점이 없고 모든 이가 중심이지요. 이때는 모두를 아우르는 리더십이 필요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1년여간 코드를 중시했을 뿐 통합의 리더십은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이번 ‘탄핵 정국’을 부정적으로만 보지 말라고 주문했다. 이미 벌어진 혼란을 발전적으로 수습해 가자는 뜻에서다. “탄핵 사태는 불법 대선자금 문제에서 비롯됐어요. 야당이 ‘차떼기’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돌파하려고 한 대응이 탄핵소추 아니었습니까. ‘10분의 1’, ‘총선과 재신임 연계’ 등 노 대통령의 발언도 그 밑바탕에는 대선자금에 대한 부담이 깔려 있었습니다. 탄핵 논란도 중요하지만 이번 기회에 정치권이 불법자금을 근본적으로 해결한다면 오히려 잘 된 일일 수 있습니다. ‘과거 없는 성자(聖者) 없고, 미래 없는 죄인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정치권이 과거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한 뒤 깨끗한 모습을 보여주면 우리가 어떻게 돌을 던질 수 있겠습니까.”

서정보기자 suhcho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