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앗싸”관록과 투혼으로 따낸 값진 승리였다. 현대건설 선수들이 2004챔피언결정전에서 우승을 확정지은 뒤 환호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강혜미 박선미 장소연. 연합
코트에 선 현대건설 노장 트리오 구민정(31) 장소연(30) 강혜미(30)의 얼굴은 하얗다 못해 노랬다. 지난해 12월부터 계속된 투어에서 전 경기에 출전해 체력이 바닥났기 때문. 코트에 서 있을 힘조차 없다던 이들은 2일 잠실학생체육관에서 KT&G V투어2004배구 여자부 챔피언결정 5차전이 시작되자 젖 먹던 힘까지 짜내 뛰었다.
현대건설은 이들 노장의 투혼을 앞세워 도로공사의 패기를 3-1(20-25, 25-14, 25-20, 25-18)로 잠재우고 3승2패로 대망의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올 시즌 6차례의 투어를 모두 석권한 현대건설은 이로써 2000년 이후 겨울리그 5연패의 위업을 달성했다. 지난 시즌도 현대건설의 벽에 막혀 준우승에 머물렀던 도로공사는 올 시즌 역시 준우승에 그쳤으나 승부를 5차전까지 끌고 가는 저력을 발휘하며 다음 시즌을 기약했다.
4차전까지 2승씩 나눠 가지며 백중세의 승부가 이어졌지만 역시 현대건설의 관록이 더 빛을 발한 경기였다.
현대건설이 첫 세트를 내줄 때만 해도 분위기는 도로공사쪽으로 넘어가는 듯했다. 레프트 주포 윤혜숙이 부산(6차)투어에서 발목을 삐는 바람에 컨디션 난조로 상대 블로킹에 차단당하고 센터 이명희까지 부진해 20-25로 세트를 뺏긴 것.
여자부 부문별 수상자구분수상자팀MVP구민정현대건설신인상지정희KT&G공격상정대영현대건설서브상윤혜숙〃블로킹상정대영〃세터상강혜미〃수비상이현지〃감독상유화석〃
현대건설은 2세트 들어 투입한 이선주(13득점)와 박선미(9득점) 카드가 적중했다. 그동안 윤혜숙의 백업 멤버로 간간이 코트에 나섰던 이선주는 적극적인 공격으로 팀 분위기를 살렸고 노장들의 노련미까지 더해 도로공사를 단 14점으로 묶은 채 세트를 따냈다.
기세가 오른 현대건설은 장소연(18득점)과 정대영(15득점)이 속공으로 도로공사 수비를 허물고 구민정의 왼쪽 공격까지 잇따라 성공하며 내리 두 세트를 더 따내 승리를 확정지었다.
이날 팀 내 최다인 19득점을 챙기는 등 올 시즌 득점 1위를 기록한 구민정은 2000년에 이어 생애 두 번째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됐다.
김상호기자 hyangsan@donga.com
▼“이렇게 힘든 챔프전은 처음”…여자부 MVP 구민정▼
“집에서 푹 쉬고 싶은 생각밖에 없어요. 몸을 추스린 후엔 여행을 떠날 계획입니다”
현대건설의 5연패를 이끌며 2000년 이후 4년 만에 다시 MVP에 선정된 구민정(사진)은 별명이 ‘구장사’. 좀처럼 힘들다는 말을 입 밖에 내지 않지만 이날은 인터뷰도 힘들어 할 만큼 진이 빠졌다.
“이렇게 힘든 챔피언결정전은 처음이었다”고 밝힌 구민정은 “시즌 후반기에는 경기가 없는 날은 무조건 쉬었다”고 말했다.
지난 시즌 팀 동료 장소연에게 MVP를 뺏긴 뒤 서운함에 눈물을 흘렸을 만큼 승부욕이 강한 구민정은 올 시즌 고비마다 해결사 역할을 해냈다. 경희대 교육대학원에 다니며 운동과 학업을 병행하고 있는 구민정은 앞으로 2∼3년 더 현역으로 뛸 계획.
체력저하를 이유로 당초 아테네올림픽 대표팀 차출을 거부했던 구민정은 최근 “대표팀에 합류하겠다”는 의사를 협회에 전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