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중국인들이 고 이관숙 목사를 알고 있다. 지난해 타계한 이 목사는 1987년부터 16년 동안 중국 각지를 돌며 손발을 잃은 3300여명의 장애인들에게 의수족을 무료로 나눠주고 7000여명의 신체장애인에게 의술을 베풀어 준 한국인이다. 그가 양성한 중국인 의수족 기술자만도 450여명에 달한다. 1992년 중국 정부는 그에게 최고 명예훈장인 유자우장(孺子牛奬)을 수여했다. 미국에서 활동하다 중국으로 옮겨간 탓에 한국에선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중국에서 그는 ‘장애인의 아버지’로 통할 정도로 폭넓은 존경을 받고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중국에서 제2, 제3의 이 목사를 찾는 일은 쉽지 않다. 최근 10여년 간 상사주재원, 사업가, 유학생들이 물밀 듯 중국 땅으로 몰려들었지만 한국인의 위상은 이에 걸맞게 질적 성장을 이루지 못했다. 한국인들은 중국을 ‘기회의 땅’으로만 보았을 뿐 그 사회와 문화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부족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한국인들이 중국사회의 적극적인 참여자로 성장하는 데에 장애물은 무엇일까. 중국에 대한 근거 없는 문화적 우월감 때문은 아닐까. 상대방의 문화와 관습을 존중하기보다 자신에게 불편한 것은 ‘뒤떨어진 것’으로 보고 이를 따르려고 하지 않는 한국인의 습성 때문에 낭패를 당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공권력에 대한 도전’. 중국에서 공권력의 권위는 절대적이다. 한국에서처럼 경찰에 맞서는 ‘용기’가 중국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오히려 ‘괘씸죄’만 추가될 뿐이다.
10여년 동안 중국에 살면서 한국 사업가들과 함께 관공서를 방문할 기회가 많았다. 관공서에 들르면 경비원의 질문에 건성으로 대답하고 무시하는 한국인들을 쉽게 볼 수 있다. 한국에서의 습관 때문일까. 그러나 중국에서는 다르다. 경비를 서는 노인도 완장을 차면 근무지에서는 ‘왕’이다. 경비원을 무시해서 문전박대를 당해도 할 말이 없다.
중국에는 ‘우물물은 강물을 범하지 않는다(井水不犯河水)’는 속담이 있다. 각자 자기 분수를 지키며 서로 간섭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왁자지껄하게 떠들며 남의 일에 참견하기를 좋아하는 중국인을 연상하기 쉽지만 실상 중국인은 좀처럼 다른 사람을 건드리지 않는 기질을 갖고 있다. 다른 사람의 일에 관심 갖기를 좋아하는 한국인의 습성은 중국에서는 ‘무례’로 받아들여지기 쉽다.
한국인은 중국인과 친해질 수 있는 좋은 여건을 갖고 있다. 한류 열풍이 아직 건재하고 있으며, 중국인은 일본인보다는 한국인에게 높은 호감도를 보인다.
최근 베이징의 한 한국교회에서 한인사회를 중심으로 결성된 ‘중사모(중국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가 중국 장애인들에게 의수족을 전달하는 행사가 열렸다. 이관숙 목사의 뜻을 이어 중국사회에 한 발 다가서려는 것이었다.
처음엔 머쓱하게 상대방을 쳐다보기만 하던 한국인들과 중국인들은 행사가 진행될수록 서로 섞여 앉아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이 자리에 참석했던 한 중국인은 “이제야 한국인들이 친구가 된 기분”이라며 눈물을 글썽였다.
배한석 CKL 중국투자컨설팅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