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국가(國歌)는 기미가요(君が代), 국기(國旗)는 히노마루(日の丸)다. 기미가요와 히노마루에 대한 일본 사람들의 감정은 복잡하다.
기미가요의 멜로디를 듣고, 붉은 원이 한복판에 그려진 히노마루를 보면 왠지 무서운 느낌이 든다는 이가 적지 않다.
과거 군국주의 광풍의 기억이 떠오른다는 것이다. 우익세력은 다르다. 그들에게 기미가요와 히노마루는 ‘일본의 위대함’을 나타내는 상징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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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일본에서는 바로 이 기미가요와 히노마루를 둘러싸고 꽤 긴 논쟁이 벌어졌다. 그것도 유력 언론사간에….
▽논쟁의 발단=최근 도쿄(東京)도 교육위원회는 도립고교 졸업식에서 국가를 제창할 때 일어서지 않았다는 이유로 교직원 170여명에게 징계조치를 내렸다. 계약직 교사 5명은 아예 교단을 떠나게 됐다.
대규모 징계사태는 양심세력을 대변하는 아사히신문과 우익 논조가 뚜렷한 요미우리 및 산케이신문의 지상공방으로 이어졌다.
아사히신문은 3월 18일과 31일자 사설에서 “국가권력이 개인의 양심에 해당하는 영역까지 간섭하는 게 타당한가”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자 산케이신문은 칼럼에서 “국기와 국가의 존엄을 깎아내리려는 (아사히의) 논조가 너무 슬프다”고 비판했다. 요미우리신문도 아사히신문이 주최하는 고시엔(甲子園) 고교야구대회에 국기게양-국가제창 순서가 있다는 점을 거론하면서 아사히 공격에 가세했다.
▽아사히와 산케이의 사설 공방전=아사히는 ‘고시엔과는 얘기가 다르다’ 제목의 2일자 사설에서 요미우리 주장을 반박했다.
“우리가 주장하는 것은 ‘졸업식에서 히노마루를 게양하지 말라, 기미가요를 부르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징계 처분이라는 위협적 수단으로 개인의 행동을 강제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것이다. 그것이 어째서 국기와 국가를 폄훼하는 것이란 말인가. 사상, 신조, 종교 등의 이유로 국기와 국가에 복잡한 기분을 갖고 있는 국민이 존재하는 게 사실이다. 싫다는 사람에게 무리를 해서 압박하는 것은 민주주의 국가의 모습으로는 너무 슬프지 않은가.”
산케이는 3일자 사설에서 ‘아사히 사설은 본질을 흐린다’며 재차 공격했다.
“아사히는 국기와 국가의 강제가 헌법이 보장한 사상 및 양심의 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크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사적인 장소라면 모를까, 학교는 아이들에게 지식과 예절을 가르치는 공교육의 장이다. 그런 것을 소홀히 하는 교사에게는 처분을 동반한 강제력도 필요하다. 아사히의 주장대로라면 교육은 성립할 수 없다…일본의 공교육을 담당하는 교사에게는 당연히 국기와 국가를 지도할 의무가 있다. 공적인 행사인 졸업식에서, 학생 면전에서 기립하지 않은 행위는 용서될 수 없다.”
아사히는 다시 4일자에 ‘산케이 사설에 답해드린다’는 사설을 게재했다.
사설은 “아사히를 비판하는 사설을 겸허히 읽었다”며 산케이측의 논지를 설명한 뒤 이렇게 끝을 맺고 있다.
“학교가 가르치는 것은 지식이나 예절만이 아니다. 스스로 배우고, 스스로 사고하는 능력이야말로 중요하다. 하지만 교육위는 국기의 위치, 연주의 방법 등 12개의 세세한 항목까지 일일이 지시하고 있다. 학교의 자주성과 개성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는 공교육 측면에서 오히려 마이너스가 될 것이다.”
히노마루와 기미가요를 둘러싼 논쟁은 우경화로 치닫는 일본 사회의 ‘정신적 홍역’을 보여주는 듯하다.
도쿄=박원재특파원 parkw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