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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프로야구/매니아칼럼]'3년만의 부활인가, 끝없는 추락인가'

입력 | 2004-04-06 14:51:00


'맏형' 박찬호(31, 텍사스 레인저스)가 벌일 운명의 일전이 7일(이하 한국시간) 오전 11시 5분으로 다가와 있다. 박찬호는 네트워크 어소시에이츠 콜리시엄에서 2003시즌 아메리칸리그 서부지구 챔프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와 결전을 벌일 예정.

스프링 트레이닝 동안 부활의 바로미터인 95마일대 직구를 회복하는 등, 재기에 안간힘을 써온 박찬호이기에 시즌 개막전은 그 어떤 경기보다 남다른 의미로 다가올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다는 게 문제다.

특명 - '멀더 징크스'를 깨라

바로 그의 선발 맞상대로 예고된 현역 최고의 좌완으로 꼽히는 마크 멀더(26)가 박찬호와는 천적관계에 해당하는 선수라는 점 때문. 박찬호는 2002시즌 내내 '멀더 징크스'의 벽을 넘지 못한 채, 시즌을 접어야만 했다.

게다가, 자신이 지켜온 기록 중의 하나이던 '6년 연속 10승'의 기록행진을 좌절시킨 장본인이 바로 멀더라는 점은 박찬호에겐 상당한 악재다. 박찬호와 멀더는 지난 2002시즌 9월 28일 '6년 연속 10승'의 위업 달성을 목전에 둔 상태에서 선발 맞대결을 펼쳤다.

당시까지 9승을 기록, 1승만 추가하면 '6년 연속 10승'의 기록은 박찬호의 소유가 되는 것. 하지만, 모진 운명은 그를 외면했다. 박찬호는 8이닝 동안 3실점의 퀄리티 스타트를 기록하며 분투했지만 텍사스의 타선이 멀더의 릴리스 포인트를 감추는 독특한 투구폼에 배트 타이밍을 맞추지 못하면서 맥없이 물러나고 말았다.

박찬호의 기록 무산은 박찬호 자신에게 원인이 있었던 게 아니라, 상대 멀더에게 존재했다. 게다가, 박찬호는 2002시즌 동안 박찬호와 4번 맞대결을 펼쳐 승리없이 3패만 당하며 소위 '멀더 징크스'에 노출되어 버린 것.

하지만, 박찬호나 멀더나 부상병동에서 올 시즌 돌아온다는 공통점이 있다. 멀더는 2003시즌 8월에 골반뼈 골절로 시즌 아웃된 후 스프링 트레이닝을 종료한 시점까지 정상적인 컨디션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위안거리 중 하나다.

찬호 vs 오클랜드 '요주의 타자'

박찬호가 경계해야 할 블랙리스트 하나는 사라졌다. 바로 2002시즌 AL MVP 수상자 미겔 테하다(볼티모어 오리올스)다.

하지만, 2003시즌 부상에서 허덕이던 저메인 다이가 2001년 본즈처럼 두꺼워진 가슴을 가지고 돌아왔다. 올 시즌 다이는 예년에는 볼 수 없던 파워 배팅을 구사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다이는 박찬호가 에릭 차베스와 더불어 불의의 '한방'을 조심해야 할 경계대상 1호다.

'OBP 철학'의 신봉자인 빌리 빈 단장의 최대 관심사인 바로 '리드오프(Lead-Off)의 부재'다. 2003시즌 빈 군단의 수색대원 마크 엘리스와 에릭 바이언스의 부진은 오클랜드 타선의 득점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샌디에고로부터 영입한 스티브 캇세이는 박찬호가 경계해야 할 대상 1호다. 비록 테이블 세터로 현란한 베이스 러닝을 구사하진 않지만, 정확한 선구안에 이은 진루를 박찬호는 경계해야 할 듯.

좌완 테드 릴리를 '작은 집' 토론토 블루제이스에 주고 데려 온 바비 키얼티도 경계 대상이다. 키얼티는 '수준급 투수와 5할 승률 이상의 팀에 강한' 진정한 킬러 본능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6일 개막전에서도 오클랜드 타자 중에는 최고의 타격감을 보여줬다.

박찬호와 오클랜드 타자들과의 대결 기록면에서 볼 때, 주의해야 할 타자들은 박찬호를 상대로 뽑은 3개의 안타가 모두 홈런으로 기록한 저메인 다이(타율 .300 3홈런 6타점)과 에릭 차베스(타율 .357 1홈런 3타점)이다.

찬호, 흐름에 편승하라

흐름에는 두 가지가 존재한다. 하나는 투구의 흐름이며 두번째는 경기의 흐름이다.

첫째, 박찬호는 '투구의 흐름'을 탈 필요가 있다. 오클랜드는 1번 스티브 캇세이-2번 바비 키얼티-3번 에릭 챠베스-4번 저메인 다이-5번 에루비엘 두라소만 경계하면 하위타선은 중압감이 떨어지는 게 사실.

평상시에 상위타선(6), 하위타선(4) 정도로 집중력을 배분했다면, 오클랜드전에서는 7:3 정도로 집중력을 상위타선쪽에 좀 더 배분할 필요가 있다.

두번째, '경기의 흐름'을 타야 한다. 텍사스의 타선은 오클랜드의 그것보다 파괴력과 타선의 응집력에서 비교 우위를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는 사실. 이를 시의적절하게 이용하라는 것이다.

박찬호 스스로 영 파워로 무장된 텍사스 타선(마이클 영- 행크 블레이락-알폰소 소리아노-브래드 풀머-마크 텍세이라 등)의 잠재력을 소멸시키는 피칭만 않는다면, 한 순간에 3점 정도는 만회할 수 있는 저력을 텍사스 타선은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

박찬호 혼자서 모든 걸 해결하려다 보면 실투가 나오기 마련, 결국엔 스스로 자충수를 두게 된다는 것이다. 텍사스의 정신적 지주답게 '경기 운영의 묘(妙)'를 살려가면서 축적된 노하우와 임기응변을 통해 경기의 흐름을 적절히 이용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게 바로 벅 쇼월터 감독이 박찬호에게 원하는 묵시적인 요구사항이 아닐까 싶다.

부활의 화두는 바로 '박찬호 자신'

자신과의 싸움은 부상의 재발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엄격한 자기 관리(Self-Control)'와도 직결된다. 네트워크 어소시에이츠 콜리시엄의 체감온도 낮은 냉랭한 대기로부터 자신의 몸에 보호피막을 형성해 낼 수 있는가도 또 하나의 관건이다.

박찬호의 부활 여부는 사실 멀더와의 대결에 달린 게 아니라, 박찬호 자신의 문제다. 자신의 구위에 자신감을 지닌다면, 멀더와의 승부에서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리 문제될 게 없다.

가장 큰 문제는 바로 박찬호의 '딜리버리(Delivery)' 상의 문제다. 1998년처럼 파워 피처의 투구폼이 되살아나지 않는 한, 박찬호의 부활은 그리 장밋빛으로 보여질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비록, '천적' 멀더와의 승부에서 이기더라도 말이다.

이일동 동아닷컴 스포츠리포터 sp5dnlwm@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