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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대]신중경/한국축구 ‘안되면 심판 탓’?

입력 | 2004-04-06 18:51:00


별 볼일 없는 사람이 자존심을 내세울 때 꼭 조상을 들먹인다. 몇 대 조상이 정승을 지냈고, 몇 대 조상이 충신이었다는 식이다. 운동 경기에도 비슷한 현상이 있다. 자타가 실력을 공인하는 팀이 패하면 심판의 편파 판정을 들먹이는 경우가 많다.

얼마 전 한국-몰디브 축구경기는 다시 보고 싶지 않은 졸전이었다. 몰디브는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142위의 약체팀이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비겼다. 수많은 코너킥, 프리킥이 나왔지만 세트플레이가 엉성했고 중앙 돌파만 고집할 뿐 중·장거리포는 거의 없었다. 패스 미스를 남발했고 조금 힘들다 싶으면 걸어 다녔다. 심판 휘슬에 집착하다 보니 차츰 이성을 잃어갔다. 팬들이 분노한 건 당연했다.

경기를 본 사람이면 누구나 심판 판정에 고개를 갸우뚱했을 것이다. 그러나 “레알 마드리드가 경기를 했어도 몇 골 넣지 못했을 것이다”(안정환), “플레이 하면서 이쯤 되면 불겠지 생각하면 어김없이 불더라. 뛸 의욕이 사라졌다”(이영표)는 식의 발언은 문제가 있다. 선수가 진 경기를 두고 심판을 탓해선 안 된다. 이는 선수들이 꼭 지켜야 할 덕목이다.

움베르토 쿠엘류 감독에게 묻고 싶다. 여태껏 9승3무6패라는 초라한 성적을 거뒀다. 물론 잘한 일도 있었지만 국민을 경악시킨 ‘쇼크’가 더 많았다. 지난해 베트남과 오만에 패한 데 이어 이번엔 ‘몰디브 쇼크’까지 만들어낸 것이다. 월드컵 4강 전사가 9명이나 끼어 있었는데도 말이다.

이 수모와 충격에서 벗어나는 길은 거스 히딩크 감독처럼 불여우가 되는 수밖에 없다. 구멍가게 아저씨처럼 마음이 좋다 보면 협회와 선수들에게 끌려 다녀 만신창이가 될 게 뻔하다.

그리고 진 탓을 심판에게 돌리기보다 판정에 수긍하는 자세부터 가르쳐야 한다. 그래야 한국축구는 다시 태어날 수 있다.

신중경 축구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