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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D-7]선관위 ‘당추천 단속반制’ 부작용

입력 | 2004-04-07 18:30:00


《3일 오후 4시경 서울의 한 지역구 선거관리위원회 사무실. 다급한 목소리로 “거리에서 선거운동원들이 후보 명함을 배부하고 있다”는 익명의 제보전화가 걸려 왔다. 선관위는 즉시 인근의 선거부정감시단원들에게 대거 현장으로 출동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러나 명함을 돌린다던 선거운동원들은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허탕 친 감시단원들은 “함께 일하는 정당추천 감시단원들이 또 정보를 후보측에 흘려줬다”며 허탈감을 감추지 못했다. ‘4·15총선’을 앞두고 각 지역선관위 선거부정감시단에 파견된 정당추천 단원들이 당초의 취지와는 정반대로 오히려 공명선거를 방해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당원 뺨치는 감시단원=정당추천 감시단원들은 관 주도의 불법 선거운동 단속을 감시하고 단속 효과를 높이기 위해 각 정당에서 추천받은 비(非)당원들. 당원이 아니라는 확인서를 선관위에 제출한다.

그러나 이들은 자신을 추천한 당 후보에게 선관위 내부단속지침을 제보해 단속을 방해하거나, 상대당 후보의 사소한 실수를 과대포장해 선관위에 보고하는 등 ‘프락치’를 방불케 할 정도로 일탈된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적지 않다.

단속 시간에 자신을 추천한 정당 후보 사무소측과 수시로 전화를 하거나 아예 직접 사무소에 들러 단속 정보를 흘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는 게 선관위 직원들의 설명이다.

출근을 하지 않고 후보 선거운동을 하는 단원도 있다.

모 정당의 추천을 받고 서울의 한 지역선관위 감시단원이 된 김모씨(40). 그는 6일 선관위 직원들이 자신을 추천한 정당의 선거운동원들을 단속하자 “이것이 왜 불법이냐”고 거칠게 항의했다. 선거운동원들이 가슴에 정치적 구호가 적힌 상징물을 달았기 때문에 분명한 단속 사유였던 것.

서울의 한 지역선관위 관계자는 “동쪽을 단속하러 간다고 정당추천 단원에게 말하고 서쪽으로 가면 단속 실적이 오히려 눈에 띄게 올라가는 일도 잦다”며 “이들에 의한 정보 유출은 매우 심각한 지경이지만 구체적인 물증이 없어 적발이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각 지역선관위들도 정보 유출을 막기 위한 나름의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 대개의 경우 중요한 회의는 선관위 내부의 일정한 장소에서 비밀스럽게 진행하고 정당추천 단원들의 접근을 불허한다.

심지어 서울의 한 지역선관위에서는 정당추천 단원들의 부정을 잡아내기 위해 직원들에게 녹음이나 사진 촬영을 지시하는 등 고강도 대책을 쓰고 있다.

▽관리도 허점투성이=당국이 집계한 전국 243개 선거구의 선거부정감시단원은 모두 1만2000여명. 이 중 절반에 가까운 5000여명이 정당 추천 단원이다.

문제는 이들이 ‘비당원 확인서’와 정당추천서만 있으면 다른 자격 요건 없이 바로 감시단원에 임명된다는 것. 또 대부분 고령의 무직자들로 선거법에 대한 전문지식이 없는 경우가 많아 선관위에서는 이들을 교육시키는 데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쏟고 있다.

감시단 관리에 대한 세부적인 규정도 없다. 다만 선거법상 ‘정당추천 감시단원들이 현저하게 중립성을 훼손하는 행동을 하거나 선관위의 지시를 따르지 않을 경우 해촉 사유가 된다’는 규정만 있다.

중앙선관위 관계자는 “선거가 끝난 뒤 정당추천 감시단 제도에 대해 재검토할 것”이라며 “문제가 있으면 추후 개정 의견을 국회에 제출할 생각도 갖고 있다”고 밝혔다.

유재동기자 jarrett@donga.com

손택균기자 sohn@donga.com

정세진기자 mint4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