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무슨 망발이란 말인가. 북한이 우리의 동족이 아닐 수라도 있다는 말인가. 얼토당토않은 말이다. 북한은 우리의 명명백백한 동족임에 틀림없다.
1950년 6월 북한이 우리에게 전쟁을 도발한 일이 없어서 우리의 동족인 것이 아니라, 그로부터 50년 긴 세월을 휴전선에서 중무장하고 우리와 대치하고 있는 주적(主敵)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의 동족인 것도 아니다. 북한은 남침전쟁에서 우리와 싸운 주적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동족이다.
▼서로 싸우고 말도 달라졌지만…▼
2000년 6월 15일 우리의 대통령과 한 떼의 ‘배경’ 좋은 분들이 평양에 가서 잠바 차림의 ‘위대한 지도자’를 둘러싸고 손에 손잡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 노래를 불러 줘서 비로소 북한이 우리의 동족이 된 것도 아니다. 또 그해 추석을 앞두고 북한군의 고위 장성이 군용기를 타고 날아와 우리의 지체 높은 분들께 산더미처럼 귀한 송이버섯을 선물해 주었기 때문에 북한이 우리의 동족이 된 것도 아니요, 그 송이버섯을 나눠 먹은 사람들만 동족이 되는 것도 아니다.
6·15선언 바로 1년 전(1999년 6월 15일) 북한은 우리 서해를 침범해 연평해전에서 혼쭐나 도망친 일이 있어도 우리의 동족이오. 또 2002월드컵 축제를 그처럼 훌륭하게 치른 한국에 대해 세계의 칭송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그것도 ‘햇빛정책’ 때문이라고 대통령이 외국 귀빈들 앞에서 막 자랑하던 6월 말, 다 된 잔칫상에 재를 뿌리듯 북한은 다시 서해 도전으로 여러 명의 우리 병사를 살해한 일이 있어도, 또 그 사실을 우리가 잊지 않고 있어도 우리의 동족이다.
1960년대 말 대한민국의 대통령을 노려 김신조 일당이 청와대의 기습을 시도했던 그 때도 북한은 우리의 동족이요, 더 멀리 거슬러 가서 그들이 한반도의 거의 유일한 전력 공급원이던 압록강발전소에서 남한 송전을 중단해서 광복 후 몇 년 동안 우리가 호롱불로 공부하던 그 시절에도 북한은 우리의 동족이었다.
남에서나 북에서나 우리는 ‘민주주의’며, ‘공화국’이라는 말을 같이 쓰고는 있다. 그러나 남에서 쓰는 그 말들은 같은 한글을 쓰는 북보다 차라리 영어나 프랑스어를 쓰는 외국에서 뜻이 더 잘 통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뜻이 통하는 영국인, 프랑스인이 우리의 동족이 아니라 말뜻이 통하지 않는 북쪽이 동족인 것이다.
예전에도 나왔지만 총선이 끝나면 ‘남북 국회회담’을 열자는 제안이 또 나왔다. 말은 같은 ‘국회’요 ‘국회의원’이라해도 남북의 말에는 천양지차가 있다. 진정 ‘동족’ 의식에서 두 국회의 대표들이 회담하겠다면 화려한 만남의 잔치보다 북에선 어떻게 의원을 뽑는지 그 ‘선거’부터 가서 보는 것이 어떨는지.
금년 5월에는 남의 노조 대표들이 북의 노조 대표들과 함께 메이데이 행사를 치른다는 소식도 들린다. 임금투쟁을 하고 시위도 하고 파업도 하는 노조와 그런 것은 꿈도 꾸지 못하는 노조도 다같이 ‘동족’의 언어로 ‘노조’라 일컫고 있다. 그러니 기왕 남의 노조 대표들이 방북한다면 메이데이만이 아니라 잔칫날 아닌 일상에서 북의 노동자들이 어떤 임금 조건, 어떤 노동환경에서 일하고 있는지도 살펴보고 와 주기를 동족의 이름으로 부탁하고 싶다.
▼‘北인권’ 유엔표결 왜 외면하나 ▼
4월 15일엔 유엔에서 북한의 인권문제에 대한 표결이 있다. ‘동맹’보다 ‘동족’을 별나게 강조한 김대중, 노무현 정부는 이 표결에 불참했거나 기권하겠다고 한다. 북의 위대한 한 사람의 ‘동족’ 때문에 국제사회에서 북의 인권문제를 제기하지도 못할 뿐 아니라 남이 제기해 줘도 맞장구조차 못 치는 사람들이 하필 ‘동족’론은 강조하고 있다.
그래도 북한이 동족이란 말인가. 그렇다. 한 사람의 ‘위대한 지도자’보다 백만 배, 천만 배 많은 사람들이 그 밑에서 굶주리고 헐벗고 인권을 박탈당한 채 살고 있으니 그들이 우리의 안타까운 동족인 것이다.
최정호 객원大記者·울산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