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서울 중심부 곳곳에 꽃망울을 터뜨리는 산벚꽃이 한창이다. 십수년 전 남산자락에 살며 대학을 다닐 때에도 온갖 꽃을 피우던 남산의 봄은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새삼 남산길을 따라 골목을 누비던 기억을 떠올린다. 다시 남산의 그 길에 서서.
남산의 해방촌이라는 동네는 오래된 영화의 세트장 같던 곳으로 가난함과 팍팍함이 묻어나는 그런 곳이었다. 그 팍팍함에 비해 그래도 자연의 넉넉함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 바로 남산이었다. 몇 년 동안 이 특별한 동네에 살면서 만들었던 기억 때문일까. 지금도 봄이 되면 가끔 남산을 오른다. 그 길을 가다보면 십수년 전의 기억과 현재의 시간 사이에 거리가 좁아졌다 멀어졌다 한다.
대학시절 가톨릭 학생서클 활동을 하면서 명동성당과의 인연이 시작됐고, 결혼과 함께 한 아이의 엄마가 되어서 10여년 만에 다시 돌아온 곳이 남산자락 아래의 명동성당이다. 그렇게 다시 시작된 생활의 터전이 바로 천주교 인권위원회다.
소위 인권단체에서 일하면서 가장 피부로 느끼는 것은 매일 방송이나 언론을 통해 듣는 소식들이 그리 먼 이야기가 아닌 바로 우리 이웃들의 이야기라는 점이다. 우리 이웃들의 이야기 가운데 인권과 무관한 일은 거의 없어 보인다. 그런 연유로 요즘 시대의 화두로 떠오르는 ‘생태’ ‘평화’ 등 여러 이슈들만큼이나 ‘인권’의 문제는 인기종목이라 할 수 있다.
어떤 문제를 다룰 것이며, 어떻게 해결해 나갈 것인지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 속에서 맞는 일상은 긴장과 판단의 연속이다. 또 사람들과의 끊임없는 ‘만남’ 속에서 가장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은 ‘의사소통’의 문제다. ‘소통’을 위해 많은 시간이 부서지기도 하고 에너지가 소모되기도 한다. 그러나 활동 속에서 얻는 작은 기쁨과 보람이 새로운 에너지를 생산하는 기폭제가 되고, 어렵기만 했던 일들이 해결되어 가는 것이 보잘것없어 보여도 참 소중하다.
사람이 죽어나가고 수천명이 학살을 당해도 무관심하기만 한 세상이 견디기 힘들고 분노에 가득 찼던 시절이 있었다. 그 분노의 자리에 평화의 나무를 심고 싶은 것이 소망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인권의 사각지대에서는 오늘도 여전히 극단적인 인권침해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 또 한편의 현실이다. 여전히 참을 수 없는 것은 무관심이다. 누군가 ‘인권’을 옹호하는 것이 또 다른 종의 생물에게는 억압이라는 말을 들으며, ‘우리가 사는 세상의 외연을 확장하면 그 세계의 끝은 어딜까’ 하는 질문을 던져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이웃을 배려하는 것은 매우 섬세하고 아름다운 일이라 생각한다.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화두로 세상을 바라보며, 온전한 개인보다 함께 만들어가는 세상에 대한 믿음이 커지길 소망한다.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만들어가는 소망을 키우며 ‘인권’에 대한 나의 질문은 계속될 것이다.
안주리 천주교 인권위원회 사무국장
약력-1969년생. 숙명여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1999년부터 천주교 인권위원회에서 일하기 시작해 2003년에 사무국장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