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경매사이트 ‘옥션’을 통해 월 매출 1억원을 올리는 주부들. 왼쪽부터 전영미, 이시초, 사선희씨. 이종승기자 urisesang@donga.com
《규모에 관계없이 무엇이든 팔 수 있는 온라인 시장에서는 주부도 ‘거상(巨商)’이 될 수 있다. 국내 최대 인터넷 경매사이트 ‘옥션’의 ‘1등급 파워셀러’들 중엔 보기 드물게 주부들도 섞여 있다. ‘1등급 파워셀러’는 연속 두 달 이상 월 1000만원 이상 매출을 올리고 구매자 불만 비율이 7% 미만인 판매자 중에서 선정된다. 그 반열에 오른 주부 3명을 만났다. 자체 브랜드 ‘티토’로 옷을 판매하는 ‘라미섬유’(www.tito.co.kr)의 전영미씨(48), 의류판매업체 ‘로즈메리’(www.rosemarys.co.kr)를 운영하는 사선희씨(30), 그리고 자동차 튜닝 머플러를 파는 ‘레이스 스톰’(www.race-storm.com)의 이시초씨(53)가 그들. 꾸준히 월 매출 1억원 이상을 거둬온 그들로부터 ‘디지털 거상’에 오른 비법을 들어봤다.》
○ 위기를 기회로
‘컴맹’인 이씨가 온라인 장터에 발을 들인 계기는 남편과 함께 해오던 자동차 머플러 제작업이 사양길에 접어들었을 때다. 7년간 머플러를 직접 만들어 차에 싣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장사를 해온 그는 2년 전 튜닝 머플러 붐이 일 때 엉뚱하게 된서리를 맞았다. 워낙 불법 튜닝이 성행하다 보니 불법 단속의 여파가 판매 부진으로 되돌아온 것.
장사를 접어야 하는 게 아닐까 고민하던 즈음에 큰딸 김경희씨(32)가 “어차피 더 손해 볼 것도 없으니 인터넷 경매를 해보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이씨는 “판매는 기대도 안했고 구조변경 승인 절차를 거치면 튜닝 머플러가 불법이 아니라는 걸 알리고 싶어서” 컴퓨터 자판을 ‘독수리 타법’으로 두드리기 시작했다.
2002년 8월 온라인 의류 판매를 시작한 전씨도 위기를 기회로 활용한 사례다. 15년간 해온 의상실을 접고 니트를 만들어 브라질 일본으로 수출하던 남편을 돕던 그는 중국산 니트와의 경쟁에 밀려 재고가 쌓이기 시작하자 온라인 시장에 눈을 돌렸다. 그는 “답답한 마음에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시작한 부업이 본업이 될 줄은 몰랐다”고 한다.
○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결합
2002년에 온라인 판매를 시작한 사씨의 리트머스시험지는 98년부터 운영해온 오프라인 매장이다. 그는 동대문시장 등을 돌며 “재킷 안에 받쳐 입는 셔츠처럼 누구나 하나쯤 갖고 있어야 되는 보편적인 이너웨어 아이템”들을 골라 명동 가게에 먼저 진열한다. 여기서 반응이 좋으면 “지역에 관계없이 전국에 어필하는 온라인 시장”에 올린다. 그렇게 해서 4900원짜리 티셔츠를 열흘 동안 1000장을 판 적도 있다. 한 달 온라인 의류 판매량은 1만점가량.
사씨의 온라인 판매 전략은 유행할 아이템을 선점해 싸게 내놓는 것. 탤런트 송혜교가 드라마에 입고 나와 유행시킨 ‘또또브이’ 티셔츠처럼 ‘뜰 징조’가 보이는 아이템을 먼저 푸는 것이 핵심이다. 티셔츠는 4000원 선, 니트 종류도 1만9000원 이하로 가격을 유지한다.
“유행 흐름을 빨리 아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TV 드라마, 패션 잡지 등을 훑는 것도 중요한 일과”가 됐다. 온라인 판매에서는 사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명동 매장에 만들어놓은 스튜디오에서 디지털카메라로 제품 사진을 찍는 것도 그의 일.
이씨도 머플러 판매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지난해 5월 경기 양평의 1급 자동차정비소 안에 오프라인 매장을 차렸다. 온라인으로 머플러를 구매한 고객들에겐 검사소 수수료만 받고 튜닝과 구조변경 승인절차를 대행해준다. 이곳을 이용하는 구매자는 하루 평균 10여명. “처음엔 누가 얼마나 올까 했는데, 튜닝을 하기 위해 대구에서 새벽에 올라와 공장 문 여는 시간을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 365일 24시간 풀가동 체제
365일 24시간 문을 여는 상점인 온라인 시장에 뛰어든 상인들은 문을 닫을 틈이 없다.
이씨는 “인터넷으로 머플러를 구매한 소비자들이 새벽 2시, 3시에도 문의 전화를 하는 경우가 많아 새벽 3시에 전화벨이 울려도 맑은 목소리로 전화 받는 연습을 할 정도”라고 한다. 게시판 문의에 12시간 이내에 응답하지 않으면 게시판이 네티즌들의 거친 항의로 도배되기 일쑤다.
전씨도 새벽 2시에 “금방 스커트를 주문했는데 색상을 적는 걸 깜빡 잊었다”는 전화를 받은 경험이 있다. 그는 “온라인 판매를 시작한 뒤 휴가를 가본 적이 없다”고 한다. 24시간 전국을 상대로 ‘오픈’ 상태를 유지해야 하는 일이 주는 중압감은 만만찮다.
○ 신용유지 최대 관건
이씨는 “오프라인 매장에선 팔면 그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온라인 시장에선 신용 유지가 관건이다. 입소문이 순식간에 퍼지기 때문에 배달부터 애프터서비스 같은 사후 절차가 제품의 품질만큼 중요하다”고 한다.
‘문을 닫을 수가 없는’ 일의 특성상 전부 가족이 총동원되는 체제로 일하는 것도 이들의 공통점. 사씨의 경우 전체 직원 10명 중 3명이, 전씨는 9명 중 3명이, 이씨는 7명 중 5명이 가족이다.
온라인을 통한 판매이지만 이들은 소비자를 직접 대면하는 듯한 시장의 왁자지껄한 분위기를 늘 경험하며 산다.
이씨는 “예전엔 생산자가 도매상을 거치지 않고 소비자를 직접 만나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라면서 “피곤하긴 해도 직접 소비자를 상대하며 즉각적인 반응을 볼 수 있는 인터넷의 활기가 좋다”고 한다.
온라인 시장에선 경기침체보다 장사에 더 큰 영향을 끼치는 요소가 “시끄러운 세상”이다.
“네티즌들이 인터넷을 여기저기 들여다보다가 온라인 경매에 들어와 구매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런데 눈길을 끄는 뉴스가 너무 많으면 온라인 구매 사이트에는 안 들어오고 뉴스만 봐요. 뉴스거리가 너무 많은 세상이 우리 같은 장사꾼들에겐 불리한 거죠.”(사선희)
김희경기자 susan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