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 (4월 11일)을 앞두고 세계의 영화관과 서점이 재림한 예수로 술렁인다.
영화배우 멜 깁슨이 제작, 감독한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가 미국에서 3주 연속 1위를 기록한 뒤 영국 멕시코 칠레 스페인 등에서도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 영화는 현재 국내에서도 흥행 1위다.
미국 엔터테인먼트산업 전문지 ‘버라이어티’에 따르면 이 영화가 6일 현재까지 세계에서 벌어들인 돈은 3억5775만1865달러. 투자자를 찾지 못해 사재 3000만달러를 털어 이 영화를 제작한 멜 깁슨은 벌써 10배 넘는 수입을 올렸다.
그런가 하면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의 아내라고 주장하는 등 기독교 초기의 역사를 재해석한 댄 브라운의 소설 ‘다 빈치 코드’는 지난해 봄 출간된 뒤 1년 가까이 베스트셀러 상위를 차지하고 있다. 예수의 전투적 면모를 부각시킨 소설 ‘영광의 재림’도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로 급부상했다. 6일 현재 미국 인터넷서점 ‘아마존’의 책 베스트셀러 순위에서 ‘다 빈치 코드’는 2위, ‘영광의 재림’은 3위에 각각 올라있다.
‘예수 재림’은 방송에서도 마찬가지. 미국 NBC 방송은 성경의 계시에 바탕을 둔 묵시론 시리즈 ‘계시’를 준비 중이다. ‘X파일’과 비슷한 분위기의 이 시리즈는 아마겟돈의 징후가 서서히 드러남에 따라 성경의 예언을 믿기 시작하는 회의적인 과학자와 수녀의 이야기를 그릴 예정.
예수를 그린 새 창작물들이 이전과 다른점은 예수의 부드럽고 평화스러운 이미지 대신 남성적이고 전투적인 이미지를 부각시켰다는 것.
가학적일 정도로 보는 이에게 고통의 체험을 강요하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는 예수가 가르친 사랑과 용서대신 고통과 분노의 감정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예수를 주인공으로 삼은 이전 영화들과 궤를 달리 한다.
미국 보스턴대 종교학 교수 스티븐 프로세로는 뉴욕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멜 깁슨의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에서 예수가 무덤에서 일어나 부활하는 마지막 장면은 거의 (‘터미네이터’의) 아널드 슈워제네거를 연상시킨다”고 말했다. 메시아에 대해 사람들이 갖는 이미지가 좀 더 어둡고 전투적이며 남성적인 콘셉트로 옮겨가고 있다는 것이 그의 해석.
소설 ‘영광의 재림’의 예수도 백마를 타고 구름 속에서 등장하며 할리우드 공포영화에서처럼 “말씀 한마디로 믿지 않는 자들의 피가 그들의 혈관과 피부를 통해 끓어 넘치게”하는, 무서운 예수다.
믿지 않는 자들의 테이블을 엎어버리는 예수의 전투적 이미지는 현대 사회에서 그들의 가치가 공격당하고 있다고 느끼는 보수적 기독교인들 사이에 널리 퍼진 불안을 반영한다는 것이 학자들의 해석이다.
9·11테러, 그리고 아프가니스탄, 이라크에 대한 미국의 전쟁을 ‘성전’으로 선포한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태도는 현재 지구상에서 벌어지는 분쟁을 이슬람 근본주의자와 기독교 근본주의자의 전쟁처럼 비쳐지게 한다. 사제의 잇따른 성추행 논란, 동성애자의 합법적 결혼에 이르기까지 기독교도들의 가치관을 어지럽히는 문화적 혼돈도 점점 거세지고 있는 추세. 이 같은 현실에서의 대립, 혼돈과 맞물려 세상의 종말 이전에 예수가 모든 것을 바로잡기 위해 재림할 것이라는 복음주의적 믿음이 점점 강화되고 있다는 것.
일부에서는 예수의 전투적 이미지에 대한 우려도 표시하고 있다. 미국 프린스턴대의 종교학 교수 엘라인 페이젤스는 “많은 이들이 지구상의 분쟁을 종교전쟁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어느 편이든 자신들만이 신의 진실을 받들고 있고, 상대편을 사탄의 사람들로 생각할 때처럼 더 돌이키기 어려운 전투도 없다”고 말했다.
김희경기자 susan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