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공 영화인
애플렉을 보고 있으면 자고로 오랜 친구의 말은 새겨들어야 한다는 어른들의 말씀이 생각난다. 그는 맷 데이먼 같은 자신의 오랜 영화적 동지이자 친구의 얘기를 무시하고 제니퍼 로페즈와의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했다. 벤 애플렉-제니퍼 로페즈 커플의 연애소동을 보고 있으면 마치 1960년대의 존 레넌-오노 요코 커플이 생각난다. 오노 요코와의 사랑을 고집했던 존 레넌은 결국 ‘비틀스’를 포기하고 말았다. 벤 애플렉도 그런 모양새다. 맷 데이먼 유의 친구를 멀리하고 제니퍼 로페즈 유의 여성 혹은 주류 할리우드를 지나치게 가까이 하면서 그는 영화적 초심을 잃고 방황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벤 애플렉은 한때 기발하고 대담하며 유머를 잃지 않는 독립영화에서 단골 배역을 맡았다. ‘섀넌 도허티의 몰래츠’ ‘체이싱 아미’ ‘굿 윌 헌팅’에서 그는 비록 주연은 아니었지만 잠재력이 뛰어난 차세대 주자로 주목받았다. 그런 그의 곁에는 늘 맷 데이먼 또는 케빈 스미스 감독 같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던 그가 어느 날 아침 잠에서 깨어 보니 할리우드의 빅 스타가 되어 있었다. 규모는 작지만 건강하고 의미 있는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보다는 흥행과 인기, 돈을 우선시 하는 부류에 슬쩍 섞이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대표적인 작품은 ‘진주만’ 같은, “미국 만세”만 외치는 ‘무뇌아적’ 블록버스터였다. 역시 세계 경찰국가로서의 미국을 옹호하는 톰 클랜시 원작의 ‘섬 오브 올 피어스’를 통해서도 그는 영화적 영혼 대신 돈과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에게서 등을 돌리게 한 결정적 영화는 지난해 상반기에 발표됐던 ‘데어 데블’이었다. 우연찮게도 이때 그는 맷 데이먼이 인상을 쓰든 말든 어디를 가나 제니퍼 로페즈와 함께 다녔다.
그런데 그는 요즘 다시 소생하는 것처럼 보인다. 신작 ‘저지 걸’ 때문이다. ‘저지 걸’은 케빈 스미스 감독이 ‘뉴스위크’의 저명한 영화평론가 데이비드 얀센조차 놀라게 할 만큼 ‘도그마’ 등에서 보였던 그간의 반골 기질을 헌신짝 버리듯 내팽개치고 만든 할리우드 주류영화다.
벤 애플렉은 이 영화에서 한때 잘 나가는 음반사 PR 전문가였지만 하루아침에 거리 청소부로 전락해 혼자 딸을 키우는 불운의 아빠 역을 맡았다. 그는 돈과 명성을 한순간에 잃기 전 사랑하는 아내마저 아이를 낳다 죽는 비운을 겪는다. 그러면서도 이 철없는 아빠는 늘 화려했던 과거로의 복귀를 꿈꾼다. 그의 앞길에 장애가 되는 것은 이제 막 일곱 살이 된 딸 아이 거티와 새로 사귄 뉴저지 마을의 지적이고 착한 여대생 마야다.
이 아빠의 선택은 당연히 할리우드의 ‘소중한 가족주의’의 원칙에 따른다. 닳고 닳은 얘기인 만큼 새롭고 놀라울 것이 전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벤 애플렉이 끌고 가는 드라마의 인간주의에는 종종 콧등이 뜨거워진다. 그런 면에서 ‘저지 걸’은 벤 애플렉이 예전의 잠재력, 연약하지만 따뜻한 지성의 이미지를 되찾은 영화다. 우연찮게도 이 영화를 찍으면서 그는 제니퍼 로페즈와 결별했다. 로페즈는 최근 벤 애플렉에게 30억원 상당의 약혼반지를 돌려줬다고 한다. 사람들은 그가 돌려받은 것이 고가의 반지 이상의 것이라고들 얘기하고 있다. 딸아이 거트를 낳고 죽는 아내 역으로 제니퍼 로페즈가 나오는 것은 이 영화에서 가장 코믹한 부분이다. 9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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