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1개 여성단체가 참여한 총선여성연대는 8일부터 ‘Vote-7’ 캠페인을 전개해 유권자가 후보를 제대로 고르는 7가지 실행 지침을 제시하고 있다. -변영욱기자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의원회관 지하 2층에서는 지금 ‘여성 의원 건강관리실’ 설치 공사가 한창이다.
전체 의원 273명 중 16명(5.9%)에 불과한 16대 여성 의원들이 2년 전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 “여성 의원 건강관리실을 만들어 주지 않으면 남성 의원 건강관리실을 점거하겠다”며 강력하게 요구해 4억원을 들여 만들게 됐다.
5월 말 완공 목표라 한창 표밭을 가꾸고 있는 17대 여성 의원들이나 이용할 수 있을 전망이다.
화장실에서 사우나까지 국회는 17대에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여성 의원들을 맞을 준비를 착착 갖추고 있다. 헌정사상 처음으로 전체 의석의 10%를 넘어설 것으로 보이는 여성의 국회 진출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점검했다.
○여자가 여자를 안찍는다?
여성정치세력민주연대(여세연) 조현옥 대표는 “여성과 40대가 이번 선거의 변수로 떠올랐다”며 “여성의 정치의식이 향상됨에 따라 이번 선거를 계기로 여성유권자가 정치의 주체로 나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단체가 2000년 16대 총선 때의 유권자 투표 성향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여자가 여자를 안 찍는다’는 말은 오랜 편견이자 틀린 말로 드러났다.
성공회대 오유석 연구교수는 당시 수도권에서 여성 후보가 출마한 7개 선거구 가운데 서울 구로 을과 도봉 갑, 경기 고양의 일산 갑 등 3개 선거구에서 투표에 참여한 만 20세 이상의 남녀 624명을 표본 추출해 설문조사했다. 이 결과 여성 유권자가 여성 후보에게 투표하는 비율이 남성 유권자보다 1.58배 더 높았다.
오 교수는 “여성 유권자가 ‘여성 후보는 안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지는 않지만 남성과 마찬가지로 지역주의나 정치성향에 따라 투표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며 “특히 탄핵정국에서 후보자의 성별은 영향력을 갖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그래서 이번 총선에서도 여성 후보에 대해 여성 유권자들이 어떤 투표 성향을 보일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여세연은 총선이 끝난 뒤 여성 후보가 출마한 몇몇 지역을 중심으로 유권자 투표성향을 조사할 계획이다.
○부패정치 대안세력 떠올라
여성계에서는 기존 정치권의 부패에 혐오를 느낀 국민이 여성 후보의 클린 이미지에 기대를 걸고 있는데다 정치의 주제가 외교 국방에서 보건 환경 교육 등 생활로 변화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여성의 정계 진출은 시대적 요구라고 주장한다.
이화리더십개발원 조형 원장(이화여대 교수·사회학)은 “이젠 권위적인 리더십이 통하지 않는 사회가 됐다”며 “의정활동에서도 유연함과 환경친화성 도덕성 등 여성적 가치를 갖춘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16대 국회의원의 의정활동을 살펴보면 각종 여론조사에서 여성 의원은 전문성 성실성 개혁성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여성계는 기존의 부패구조에 익숙한 남성 중심 집단에 여성 의원들이 대거 진입하면 남성들이 강조하는 집단적 조직문화가 약화되고 상호의존적이던 부패구조도 약화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또 사회 곳곳에 남아있는 성차별적 편견을 약화시켜 평등권의 실현을 앞당길 수 있는 지름길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성계에서 여성 후보만을 선택하라는 것은 아니다.
한국여성단체연합 남인순 대표는 “각 당이 여성들을 내세우고 있는 것은 여성을 이미지 정치에 이용하려는 의도가 짙다”며 “남성이라도 기존의 부패정치와 패거리정치를 바꿀 의지와 인식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지지한다는 것이 여성계의 입장”이라고 밝혔다.
○40여명 금배지 달듯
전체 243개 선거구에서 모두 66명의 여성후보가 나섰다. 선거운동 시작 전 각종 여론조사로는 이 중 15명 정도가 우위를 점하거나 2위와 접전을 펼치고 있어 적어도 10명, 많으면 20명 안팎의 여성 후보가 당선될 것으로 예상된다.
또 자민련을 제외하곤 각 정당이 비례대표 후보를 정하면서 여성 후보를 모두 홀수 순번에 배정해 전체 비례대표 56석 중 28석을 여성이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정당법은 비례대표 후보의 경우 당이 낸 전체 후보의 50% 이상을 여성 몫으로 하도록 했을 뿐 그 순서에 대한 규정은 따로 두지 않았는데도 이번 선거에서 대부분의 당이 홀수 짝수 순번제를 지켰다.
여세연 조 대표는 “여성이 지역후보로는 여성계가 요구한 30%에 훨씬 못 미치는 5.6%에 불과하지만 비례대표에서는 사실상 50%가 관철돼 40명 정도의 여성 의원이 탄생할 것으로 본다”며 “여성의 대거 국회 진출은 기존 정치문화를 바꿀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김진경기자 kjk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