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오후 7시 경기 고양시 일산구 장항동 S주점. 간판에 ‘소주 한잔 400원’이라고 써놓은 이 집에는 술을 마시기엔 다소 이른 시간인데도 10여개의 테이블이 꽉 차는 등 손님들로 북적댔다. 소주병 없이 잔술만 마시고 있는 테이블도 눈에 띄었다. 50대 남성은 “직장을 잃은 같은 처지의 친구들과 산에 갔다 오는 길”이라며 “잔술을 팔아 부담 없이 종종 들른다”고 말했다. 주인 안경희씨(32·여)는 “처음부터 잔술을 시키거나 한 병 정도 마신 뒤 잔술로 한두 잔만 더 시키는 알뜰족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4개월 전 장사가 될 것 같아 프랜차이즈 점포로 개업한 안씨는 “매출은 늘었지만 불황의 단면을 보는 것 같아 마냥 즐겁지만은 않다”고 말했다. 》
불황의 그늘이 짙어지면서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때처럼 허리띠를 졸라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반면 서민들을 상대하는 업소들은 한 명의 손님이라도 더 끌기 위해 가격을 내리거나 저가 상품을 앞 다퉈 내놓고 있다.
▽허리띠 졸라매기=점심으로 도시락을 싸오는 직장인이 늘고 있다. 구내식당이 싸기는 하지만 워낙 주머니 사정이 어렵다 보니 그나마도 절약하기 위해서다.
충북 청원군 공군교재창에 15년째 다니는 김미연씨(37·여·충북 청주시 흥덕구)는 “여직원이 18명인데 모두 도시락을 싸오고 있다”며 “절반 정도는 올해부터 도시락을 싸오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광주 북구 운암동 D슈퍼마켓은 티슈 대신 두루마리 화장지를 비롯한 저가 상품을 진열대 앞쪽에 내놓았다.
주인 정모씨(54·여)는 “6년 전 외환위기 때처럼 두루마리 화장지가 잘 팔린다”면서 “라면도 400원대의 저가 제품이 더 잘 나가 침체된 경기를 피부로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취업전선에 나서려는 사람들은 한푼이라도 아끼려고 사설독서실 대신 공공도서관으로 몰려들고 있다. 고양시 일산구 마두도서관은 400석의 열람실이 평일에도 오전 9시면 꽉 찬다. 도서관 관계자는 “학생은 거의 없고 20대 취업 재수생과 30, 40대 자격증 준비생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저가 업소 인기=인천 연수구 옥련동에서 삼겹살을 파는 T주점은 ‘소주 1병 100원’이라는 파격적인 가격으로 손님을 끌고 있다.
단돈 1000원으로 제품을 살 수 있는 ‘1000원 전문점’도 인기.
부산 부산진구 부전동에서 최근 문을 연 ‘Mr.1000’은 3000여가지의 생활용품 가운데 90%를 1000원에 판매하는 매장이다. 1월 사상구 학장동에 문을 연 1호점이 반응이 좋아 2호점까지 냈다.
지난해 11월 부산 금정구 장전동 부산대 앞에 1평반짜리 초밥집을 연 이재훈씨(28)는 “초밥 3개에 990원이라는 부담 없는 가격 때문인지 젊은이가 많이 찾고 있다”며 “장사가 잘 돼 부산과 울산에 5곳의 분점을 냈다”고 말했다.
목욕료나 자장면 값을 낮추는 업소도 늘고 있다.
울산 남구 신정동 울산시청 인근의 대중목욕탕들은 지난달부터 목욕료를 4000원에서 3500원으로 내렸다. 이에 뒤질세라 간선도로 남쪽의 한 사우나는 목욕료를 3000원으로 기습 인하했다.
인천 남구 용현동 인하대 인근 중국집은 지난해 자장면 값을 1000원으로 내렸다.
고양=이동영기자 argus@donga.com
인천=황금천기자 kchwang@donga.com
청주=장기우기자 straw82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