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여 스님이 축서사 삼성각 옆을 돌며 행선(行禪·걸으며 참선하는 것)하고 있다. 스님은 수행을 통해 자신의 마음부터 닦으라고 주문했다. -봉화=서정보기자
이달 초 경북 봉화군 문수산(1205m)을 찾았을 때 정상 부근에는 흰 눈이 덮여 있었다. 전날 평지에는 비가 내렸지만 산 위에는 눈이 내렸다. 정상의 흰 눈과 아래의 푸른 수목이 어우러져 청백(靑白)의 조화미를 자아내고 있었다.
문수산 자락을 굽이굽이 올라가면 중턱에 아담한 절이 눈에 띈다. 통일신라시대 의상대사가 창건한 천년 고찰 축서사.
불교계 차세대 선지식으로 이름 높은 이곳 주지 무여(無如·64) 스님은 “부끄럽게 중노릇하는 산골 중에게 뭐 들을 말이 있다고…”라며 기자를 맞았다. 축서사에는 10여명의 수좌(首座)가 하루 17시간씩 참선하는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하고 있다. 경내에는 대중 선방을 만드는 증축 공사가 한창이다.
스님은 매일 여러 일간지를 정독한다. 깊은 산중에 있지만 세상의 흐름을 놓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요즘 ‘탄핵 사태’를 바라보는 스님의 견해가 궁금했다.
스님은 “탄핵 뉴스를 듣는 순간 얼굴이 화끈했다”고 말했다.
“정치인이 국민을 부끄럽게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정치가는 공명정대하고 대승적이어야지요. 그래야 국민이 믿고 따릅니다.”
그러나 스님은 한국 정치는 그동안 정반대로 달려 왔다고 개탄했다.
“지난 1년간 실정과 실언으로 국민을 불안하게 한 노무현 대통령은 진심으로 각성하고 반성해야 합니다. 국회도 탄핵까지 가는 다수당의 횡포를 부리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탄핵 역풍도 자업자득입니다.”
그는 원수에게 선과 덕을 베풀 줄 아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럴 때일수록 화합해야 합니다. 서로가 자기 목소리를 낮추고 남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남에게 양보하고 반대파를 공경하는 마음을 가져야지요.”
그는 하루 10분씩이라도 자신을 되돌아보는 수행을 하자고 권했다.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고 당장의 이익과 안위만을 위해 허겁지겁 사는 게 아닌지, 스스로 마음을 닦아 보라는 것이다.
“마음을 닦는 수행을 통해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선 불안하고 괴로운 마음이 없어지고 건강에도 좋아요. 인생을 보는 눈도 달라지지요.”
스님은 현 난국을 슬기롭게 극복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뜻에서 이번 총선에 큰 관심을 보였다. 지혜로운 국민은 난국을 겪으면서 성숙해진다는 것.
“흑백논리에 흔들리지 말고 냉철한 이성으로 인재를 가려내야 합니다. 능력 있고 법과 원칙을 중시하는 일꾼을 뽑아야지요. 그리고 이번 총선에선 여야가 세력 균형을 이뤘으면 합니다. 서로 견제하고 경쟁하면서 한국정치가 한 단계 발전하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봉화=서정보기자 suhcho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