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챔피언결정전 7차전에서 KCC가 TG삼보를 누르고 정상에 올랐다. 누구보다 KCC 신선우 감독은 남다른 기쁨을 느꼈을 것이다. 일부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평소 포커페이스로 정평이 난 신감독이 우승 후 눈물까지 보였다고 한다.
정상에 오르기까지 신 감독은 도박에 가까운 모험을 했다. 키가 작아 수비에 문제가 있다고 내친 조성원을 다시 받아들였다. 그것도 7억원의 트레이드 머니를 지불하고 영입한 전희철과의 맞트레이드였다. 또 편법 시비에다 모비스에 신인 지명권을 주면서까지 바셋을 임대해 왔고 시즌 막판에는 기록밀어주기 추문에 시달렸다. 그런데도 정규리그 1위를 TG에 내줬으니 마음고생이 심했을 게다.
그러나 그는 ‘신산(神算)’이라는 별명대로 플레이오프에서 승부수를 던져 우승했다. 이런 신감독과 필자는 연세대 74학번 동기로 만났으며 졸업 후 다른 동기생인 박수교 전자랜드 신임 감독과 실업 현대 농구단의 창단멤버로 활약한 인연이 있다.
우리가 은퇴할 무렵 당시 감독이었던 고 이경재 선생님께서 “선우는 현대여자팀 감독을 하고 수교는 남자농구팀 감독을 해야 한다”며 필자에게는 “희암이는 연세대 감독을 해야지”라고 하신 적이 있다. 몇 년 후 신기하게도 가장 먼저 신선우는 현대여자농구팀 창단 코치를 맡았고 곧이어 필자가 연세대 코치에, 박수교가 현대남자팀 코치와 감독을 맡으면서 우리는 이 선생님의 정확한 예언에 감탄한 적이 있었다.
그 후 신 코치는 잠시 농구를 떠나 현대증권 법인영업부장으로 근무하다 동기인 박수교 감독의 후임으로 현대 남자팀 감독을 맡아 농구와 다시 인연을 맺었다. 벌써 3번째 우승 헹가래를 받았으니 이제 명장 반열에 올라선 셈이다.
신 감독이 유달리 규칙에 관한 수읽기에 밝은 것은 증권사에서 법인영업을 하면서 얻은 사회경험과 리더십 때문이리라.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물리치는’ 삼국지처럼 신 감독의 지략은 날이 갈수록 날카로워지고 있다. 과연 그 끝은 어디인가. 앞으로 몇 번이나 더 챔피언 반지를 낄 것인가. 부러움 반 두려움 반의 심정으로 ‘최희암의 버저비터’를 끝맺는다.
프로농구 시즌을 마감하면서 그 동안 졸필을 읽어주신 독자여러분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MBC 농구해설위원 cowm55@yaho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