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인물포커스]한국소재 詩로 美사회 큰반향 수지 곽 김

입력 | 2004-04-13 18:21:00

젊은 나이에 미국 시단에서 주목받고 있는 한국계 미국인 수지 곽 김. 주로 한국에 대한 시를 많이 써온 그는 “이제 소재의 폭을 넓혀 다양한 얘기를 시 속에 담고 싶다”고 말했다. 아래는 수지 곽 김이 지난해 출간한 시집 ‘분단국가의 기록’. -뉴욕=홍권희특파원


한국계 미국인인 수지 곽 김(36·뉴저지주 드루대 영문과 교수)이 미국 시단(詩壇)에서 큰 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2년 전 미국 권위의 시문학상인 ‘월트 휘트먼상’을 받으며 화려하게 시단에 등장한 김씨가 인터뷰 요청에 한달이 지나서야 연락을 하면서 또 하나의 화려한 소식을 전해 왔다.

“최근 몇 주째 전국 대학이나 도서관에서 열린 시낭송회에 초대받아 독자들을 만나느라 무척 바빴습니다. 1년에 40∼50곳은 방문하게 되는 것 같네요. 세계 최대 시문학상인 그리핀상의 최종후보에 들었다는 통보를 며칠 전 받았습니다.”

캐나다 토론토 출신의 기업인 스콧 그리핀이 2000년 창설한 그리핀상은 전년 발간된 영시집 가운데 최고작을 골라 캐나다 시인 1명과 국제부문 시인 1명에게 시상된다. 상금은 각각 4만캐나다달러(약 3400만원). 6월 2일 토론토에서 후보자들의 시낭송회에 이어 다음날 수상자가 발표된다.

지난 주말 뉴욕 맨해튼에서 만난 김씨는 “그리핀상 국제부문은 15개국에서 응모한 423명 가운데 최종후보가 4명이 뽑혔는데 나머지 3명은 50대 이상”이라고 소개한다. 퓰리처상 수상자이며 시집을 18권이나 갖고 있는 루이스 심슨(81) 등 3명이 낸 책을 다 합하면 47권. 한 사람당 15권이 넘는다.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김씨의 시집은 딱 한 권. 작년에 낸 ‘분단국가의 기록(Notes from the Divided Country)’이 그것이다.

“시집을 내지 않은 미국 시인을 대상으로 공모하는 월트 휘트먼상을 2002년에 받아 다음해 시집을 발간하게 됐죠. 당시 응모자가 1100명이 넘었습니다. 미국에선 시집이 잘 팔리지 않는데 이 책은 3쇄에 총 1만권이 넘게 팔렸죠. 한국 유명 시집에 비하면 적지만….”

‘풀잎’ 등으로 한국에도 널리 알려진 시인 월트 휘트먼을 기리기 위해 1975년 제정된 이 상은 5000달러(약 570만원)의 상금보다는 훨씬 묵직한 의미를 갖고 있다. 마치 프로선수들의 신인상처럼 단 한번의 기회밖에 없다. 그래서 경쟁은 치열하기만 하다.

그의 시 소재는 주로 한국이다. 현재보다는 과거가 많다. 창씨개명에 반대하는 등 일제에 항거하는 조상들, 일본 순사를 피해 도망다니던 할머니와 화전민(火田民)의 척박한 삶도 나온다. ‘모국어 번역’이란 시는 이국 하늘 아래서 홀로 김장을 담그는 어머니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아버지를 위해’라는 부제의 ‘잊혀진 전쟁의 파편들’에선 1·4후퇴 때 삼형제가 이북에서 피란길에 올라 공습을 피해가며 부산까지 내려가는 고생담을 다시 들을 수 있다. 4월초파일 연등으로 물든 서울 광화문 거리를 걸으면서도 그는 한국의 역사를 숨쉰다.

요즘 한국에서는 오히려 듣기 어려운 이야기들이다. 한국의 역사에 천착하는 그의 시에 주목하는 것은 오히려 미국 시단이다. 왜 그럴까. 그리핀상 심사위원들은 이렇게 설명한다. “김씨의 상상력은 과거와 현재를 여행하면서 그의 부모와 조상들이 살던 전쟁터를 현실로 창조해내고 있다. …그의 정치(精緻)한 시구에서는 언어의 정확성과 음악성을 통해 주술(呪術)의식이 벌어지는 것 같다.”

‘계속 한국을 소재로 삼을 것이냐’는 질문엔 고개를 내젓는다.

“시가 다룰 수 있는 범주는 인생만큼이나 넓습니다. 세상 모든 것이 시 소재가 될 수 있죠.”

꼭 시를 쓰기 위한 것만은 아니겠지만 그는 세상사에 밝다. 이라크전쟁이나 북핵문제, 미국 행정부의 테러 대응 등의 현안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척척 밝힌다. 명문사립고 필립스 아카데미와 아이비리그의 예일대 출신답게.

연세대 의대 출신인 부친 곽충모씨는 1967년 도미해 뉴욕주 북부의 포킵시에 정착해 병원을 운영하고 있다. 부친의 성을 따 ‘수지 김 곽’이란 이름을 가졌던 김씨는 21세 때 어머니 성으로 바꿨다.

‘여성운동 차원이냐, 부친이 서운해 하지는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나는 온건주의자”라면서도 “그런 것은 내 인생에 관한 것”이라고 응수한다.

올겨울 한국어를 더 공부하기 위해 한국을 다시 찾으며 내년엔 처음으로 북한을 방문할 예정이다.

뉴욕=홍권희특파원 konihong@donga.com

수지 곽 김은

△1968년 미국 뉴저지주 출생

△1991년 예일대 영문과 졸

△2002년 월트 휘트먼상 수상

△2003년 첫 시집 ‘분단국가의 기록

(Notes from the Divided Country)’ 발간

△2004년 첫 시집이 기리야마 환태평양 도서상

‘픽션부문 주목할 만한 책 20권’에 선정

△2004년 노던 캘리포니아 북 어워드 수상

△2004년 세계 최대의 시문학상인 그리핀상

최종후보에 선정(6월 3일 수상자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