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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卷三. 覇王의 길

입력 | 2004-04-14 18:21:00


20萬을 산 채 묻고 ⑧

그 무렵 초나라에 항복해 옹왕(雍王)으로 높여진 장함과 상장군 사마흔(司馬欣), 진군선봉(進軍先鋒) 동예(董예)는 항우의 군막에 있었다. 초저녁부터 항우가 불러 술잔을 내리는 바람에 영문도 모르고 취해가고 있는데 문득 멀리서 희미하게 함성이 들렸다. 장함이 진나라 마지막 명장(名將)답게 긴장하여 술잔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이 무슨 함성입니까? 어제그제의 싸움으로 부근에서 상장군께 맞설 만한 진군(秦軍)은 없어졌는데 어찌된 일입니까?”

“별일 아닐게요. 우리 군사들 사이에 시비가 있거나, 간 큰 패잔병들이 몰려다니다 소란을 피우는 것이겠지요.”

항우가 그렇게 말하면서 다시 장함에게 술을 권했다. 군사를 부리는 일이라면 그 누구보다 날카롭고 재빠른 감각을 자랑하는 항우가 그렇게 나오자 장함도 마음을 놓았다. 거푸 몇 잔을 더 받고 거나해서야 자신의 군막으로 돌아가 잠이 들었다.

그 사이에도 신안(新安) 남쪽 골짜기에서는 살육이 이어졌다. 항복한 진나라 장졸 20만이 워낙 대군인 까닭에 일방적인 도살이라 해도 그들을 모두 죽이는 것은 작은 일이 아니었다. 한편으로는 골짜기 끝의 낭떠러지로 밀어붙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골짜기 안에서 개돼지 잡듯 함부로 죽여도 그들 모두를 쓸어버리기 위해서 초나라 군사들은 밤을 새워야 했다.

이윽고 날이 희붐하게 밝아오자 마침내 골짜기 안에는 초나라 군사들을 빼고는 살아 움직이는 사람이 없었다. 20만의 진나라 장졸은 모두 시체가 되어 골짜기에 누웠거나 골짜기 끝 벼랑 아래로 떨어져서 수십 길 아래 바닥에 겹겹이 쌓였다. 경포가 사람을 보내 항우에게 그 일을 알렸다.

“밤새 본진에 남아 푹 쉰 군사들에게 흙 퍼 담을 자루와 삽과 괭이를 주어 그 골짜기로 보내시오. 골짜기 끝의 낭떠러지를 허물면 그것들을 모두 묻을 수 있을 것이오. 군사들을 재촉하여 사람들의 눈과 귀가 쏠리기 전에 자취도 남김없이 모조리 묻어버려야 하오!”

자신의 군막에서 잠 안 자고 기다리던 항우가 이번에는 계포(季布)를 불러 그렇게 영을 내렸다. 전날에야 그 계책을 들은 계포 역시 잠 못 이루고 있다가 그 같은 항우의 명을 받자 들어서 아는 대로 말했다.

“벼랑 아래로 떨어진 군사들은 태반이 아직 숨이 끊어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골짜기 안에도 죽은 척 쓰러져 있다가 목숨을 구걸하는 진나라 이졸(吏卒)들이 많다고 하는데 그들은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그것들도 모두 묻어 버리시오. 이미 벌어진 일이니 차라리 모조리 죽여 깨끗이 입을 막는 수밖에 없소.”

항우가 충혈된 눈으로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잔을 들었다. 그 철석같은 심장도 20만의 목숨이 죽어가며 울부짖는 소리에 끝내 무심할 수만은 없었음에 틀림없었다.

군막을 나간 계포는 곧 항우가 시키는 대로 했다. 밤새 아무 것도 모르고 본진에서 잘 쉰 군사 10만을 데리고 남쪽 골짜기로 가서 경포와 포장군이 밤새 해놓은 일을 마무리 지었다. 먼저 골짜기의 항졸부터 산 자 죽은 자를 가리지 않고 모조리 벼랑 아래로 쓸어 넣은 다음, 그 벼랑을 허물어 또한 죽은 자와 산 자를 가리지 않고 모조리 그 바닥에 묻고 말았다.

글 이문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