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녀를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패션 스트리트에서 만났다. 패션계에 종사하는 그녀와 거리를 둘러보며 요즘 유행을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그녀는 한 옷가게 매장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내게 말했다.
“이 아이, 예쁘지 않나요?”
그녀가 말한 ‘이 아이’는 미니 데님 스커트이다. 도대체 왜 그녀는 스커트를 가리켜 ‘아이’라고 부르는가.
“귀엽잖아요. 친근하고. 그러고 보니 요즘 이 동네 유행어네요. 옷이나 가방을 두고 ‘아이’라고 말하는 것….”
그녀가 구사한 화법은 패션 피플이 집결하는 청담동에서는 벌써부터 널리 쓰이고 있다. 이미 수많은 이에게서 비슷한 말투를 들어 왔다. 이 아이는 이랬고, 저 아이는 저랬고….
패션과 유행에 민감할수록 ‘아이’라는 단어를 선호했다. 미혼일수록 더욱 그랬다. 여자뿐 아니라 남자들도 옷, 가방, 스니커즈, 승용차 등 자신이 애착을 갖는 대상을 스스럼없이 ‘아이’라고 부른다. 마치 애완견을 지칭하는 것처럼.
‘아이’ 화법이 구어적이라면, 이들은 지극히 문어적인 표현도 동시에 쓴다. 이른바 ‘그, 그녀, 그들’ 화법이다. 이 역시 요즘 이 동네의 핫(hot) 언어 트렌드다.
예를 들면 이렇다.
“어제 패션 행사장에 배우 장진영이 왔는데, 그녀는 더욱 예뻐진 것 같았어요.”
“그들은 잠시 자리를 비웠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대화 중에 그, 그녀, 그들 대신 그 남자, 그 여자, 그 사람들이라는 단어를 썼을 게다.
‘그, 그녀, 그들’이란 말을 쓰는 많은 사람에게 이유를 물었더니 다양한 해석이 나왔다.
어떤 이는 신문과 잡지 등 미디어와 접촉 빈도가 높아 문어체 단어를 인용하는 것 같다고 했다. 다른 이는 ‘he, she, they’를 번역한 표현이 좀 더 국제적 느낌을 전달하는 것 같다고 했다. 또 다른 이는 누구나 인터넷에 자신의 생각을 글로 옮길 수 있게 됨에 따라 글쓰기가 자연스럽게 대화 속에 녹아 든 것 같다고 했다.
일찍이 언어학자 페르디낭 드 소쉬르는 언어로 대표되는 기호 체계는 사회적 약속에 따라 의미를 생산한다고 했다. 요즘 청담동의 두 가지 유행 화법, ‘아이’와 ‘그, 그녀, 그들’에는 인간의 원초적 그리움과 관계의 적당한 거리 두기가 혼재해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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