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지한 자세로 슬라브행진곡 연주에 몰두한 연주자들. 하지만 쉬는 대목에서는 각자 알게 모르게 온갖 제스처와 표정을 짓게 마련이다. 이종승기자 urisesang@donga.com
《클래식 음악회에 간다. 잘 차려입은 연주자들, 엄숙한 분위기. 아는 곡이 나오면 깨어 있고 모르는 곡이면 명상에 잠긴다. 몇 차례의 커튼콜에서 신나게 박수를 치고 팸플릿을 옆에 끼고 집으로 온다. 왠지 문화적인 삶을 산 것 같아서 마음은 충만하다. 몇 가지 궁금증이 떠오르지만 어디 딱히 물어볼 데도 없다. ‘앙코르곡은 미리 준비하는 건가’ ‘시작 전에 혼자 삑 부는 저 악기는 뭐지’ ‘심벌은 한 번 밖에 안쳤는데 월급이 똑같나’ 등등. 음악 하는 사람들의 세상은 어떤 것일까. 왠지 예민할 것 같고, 엘레강스할 것 같은 세상. 구리시 교향악단(지휘 강창우) 연주회에 타악기 주자로 참여하며 본 무대 안과 밖 이야기.》
○ 차이코프스키 1812서곡
일반인으로서 프로 연주회에 불쑥 참가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러나 기자가 대학시절부터 아마추어 오케스트라에서 타악기 주자로 활동해 온 경력을 설명하자 흔쾌히 넣어주었다.
이 곡에서 기자가 맡은 파트는 베이스 드럼. 흔히 ‘대고’나 ‘큰북’이라고 부른다. 이 곡은 서곡이기는 하지만 팀파니, 스네어 드럼(작은북), 벨, 심벌, 종 등 각종 타악기가 10여개나 들어가며 야외연주에서는 대포도 쏘는 대곡이다(나폴레옹의 러시아 침공을 격퇴한 기쁨을 표현한 곡이다).
함께 연주한 슬라브 행진곡에서는 팀파니를 쳤다.
리허설에서 지휘자가 연방 “피아노!”를 요구한다. 도대체 얼마나 작게 치라는 건지.
피아니시모(pp), 피아노(p), 메조포르테(mf), 포르테(f) 등등 여러 악상기호가 있지만 그저 할 수 있는 것은 ‘크게’와 ‘작게’뿐이다.
악상기호라는 것이 작곡자의 ‘느낌’을 표시한 것이니 그 느낌을 어찌 알 수 있나. 몇 번을 요구하던 지휘자는 결국 한 번 노려보는 것으로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쉬는 시간. 지휘자가 다가와 말을 한다.
“모든 작곡자들이 피아노라는 악상기호를 사용하죠. 하지만 다 각자 느낌이 다르잖아요. 차이코프스키가 어떤 느낌을 표현하고 싶어서 피아노라고 적었을까하는 것을 고민해야죠. 그냥 작게만 친다고 음악이 되나요.”
“그럼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는 어떤 느낌인가요?”
엉뚱한 질문에 지휘자가 눈을 동그랗게 뜬다. 질문이 너무 거룩했나?
여담인데 악기마다 노동 강도는 다르지만 보수는 대체로 같다. 공연 내내 쉴 새 없이 연주해야 하는 현악기와 몇 번 안치는 심벌을 생각하면 된다.
그래서 음악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누구는 10원, 20원, 30원…씩 돈 벌고 누구는 1만원, 2만원…씩 번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 무대 안 풍경
이윽고 연주회 시간. 시 체육관에서 열린 이번 공연의 타이틀은 ‘구리 시민과 함께하는 차이코프스키’가 주제다.
체육관을 꽉 채운 시민들. 요란한 박수와 함께 지휘자가 등장하고 오보에가 A(라)음을 불면 나머지 악기들이 여기에 음을 맞춘다. 사실은 사전에 모두 음을 조율해 놓지만 그래도 무대에 오른 뒤 최종적으로 음에 맞추는 퍼포먼스다.
음악이 흐르는 무대 안은 엄숙하고 진지하리라 생각했는데 표 나지 않게 온갖 장난이 벌어진다.
박수 소리에 맞춰 발을 구르고, 옆자리 친구와 눈웃음으로 장난도 치며, 티 나지 않은 작은 실수에 가볍게 눈살을 찡그리기도 한다.
객석에서 보면 유려한 음악이 진행되는 것 같지만 프로들도 연주 도중 항상 실수를 한다. 예를 들면 간혹 미세하게 늦거나 빠르게 나온다든지, 음정을 실수한다든지, 리듬감이 약간 흔들린다든지 하는 것 등이다.
하지만 엄청난 실수가 아니면 객석에서 알아채기는 어렵다. 절대로 얼굴 표정이 변하지 않는 데다 시간적으로 음악이 흐르고 있어 멜로디에 주의가 쏠리기 때문이다.
몇 십 마디를 기다리다가 이윽고 내가 등장할 차례. 온갖 폼을 다 잡고 준비를 했지만 그만 나와야 할 부분을 놓치고 말았다.
‘찐빠’다!
프로들 간에 몇 가지 음악적인 속어들이 있는데 ‘찐빠’도 그중의 하나다. 쉽게 말해 함께 다 같이 나와야 하는데 먼저 나오거나 늦게 나오는 것, 혹은 못나오는 것 등을 말한다.
음악이 “쿵”하고 들려야 하는데 “쿵 짝!”하고 들리면 얼마나 웃긴지.
‘삑사리’란 관악기가 한참 불다가 갑자기 “삑”하고 완전히 다른 음이 나오는 경우를 말한다. 대개 호른이나 클라리넷에서 많이 발생하는데 입으로 불 때 세기 조절을 잘못하면 터져 나오는 경우가 많다.
타악기가 안 나오는 부분. 옆자리 단원이 속삭인다. “끝나고 쟤랑 맥주 한잔 하죠.”
‘쟤’란 이날 객원으로 온 피아노 치는 사람을 말한다. 연주 내내 그녀만 쳐다보던 그는 결국 탬버린 치는 도중 박자와 리듬을 완전히 ‘찐빠’ 냈다. 잿밥에만 관심이 있으니 당연하지.
그래도 앙코르곡을 두 번이나 연주했다. 시민들의 큰 박수가 있기도 했지만, 앙코르를 전제로 미리 준비했던 곡이다.
○ 그들만의 리그
비엔나 필이나 장영주 같은 거장이 오면 표 값은 수십만원을 호가한다. 객석도 꽉 찬다. 하지만 일반 국내 단체 연주회장은 텅 빈 객석을 둔 그들만의 연주회가 대부분이다.
우리 음악수준이 비엔나 필이라서? 이벤트에만 강한 국민성은 예술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대중만 탓할 일도 아니다. 세종문화회관은 지난해 산하 단체인 서울 시향의 지휘자가 ‘연간 180일 이상 근무해야 하는 규정’을 어겼다는 이유로 해촉 통보를 하기도 했다. 여기서 ‘근무’란 사무실 출근을 말한다.
일년 내내 베를린 필을 지휘했더라도 이 기준대로라면 ‘일을 하지 않은’ 것이다.
공무원이 철밥통이라지만 오케스트라도 만만치 않다. 실력이 떨어져도 나올 생각도, 내보낼 생각도 하지 않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또 아예 그런 시스템도 없는 곳이 대부분이다. 이 때문에 젊은 실력파들은 객원 연주나 시간강사로 생계를 유지하거나 나름대로 삼삼오오 모여 그들만의 단체를 만든다.
문화 불모지인 대한민국 거리 곳곳에 수많은 공연 포스터가 항상 붙어있는 이유 중의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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