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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이철용/“당첨만 된다면 이런 고생쯤은…”

입력 | 2004-04-15 18:16:00


정문 앞에서 1km가량 한 줄로 늘어선 관람 대기자들, 방문객의 후문 출입을 막고 있는 ‘보디가드’, 늘씬하고 낭랑한 목소리의 도우미들, 부지런히 중개업자들의 명함을 돌리고 있는 ‘아르바이트 아줌마들’….

14일 경기 부천시 중동에 있는 주상복합 ‘위브 더 스테이트’ 견본주택 주변의 모습은 지난달 중순 질탕한 투기판을 벌였던 서울 용산의 주상복합 ‘시티파크’의 복사판이었다.

“시티파크가 부동산시장의 겨울잠을 깨운 셈이다. 거기서 떨어진 사람의 절반은 여기로 밀려온 것 같다.”

200개의 명함통이 든 자루를 끼고 비치파라솔 의자에 앉아 있던 떴다방 심모씨(42)의 진단이다.

주부 정은진씨(42·가명)도 그중 한 명이다.

견본주택 내 음료서비스 코너에 앉아있던 그는 “서울 대치동에서 지하철을 2번이나 갈아타고 2시간 만에 오다 보니 진이 빠졌다”고 한다.

‘굳이 이런 고생을 사서 해야 하나….’

지하철을 타고 오면서 스스로 한심하다는 생각도 들었단다.

―그래도 아주머니는 내 집을 갖고 있을 것 아닙니까, 그것도 강남에.(기자)

“깔고 앉아 있는 돈이 무슨 소용이에요? 자식들 교육비는 어떡하고 노후생계는 또 어떡합니까.(노후생활 제대로 하려면) 3억원은 있어야 된다면서요?”

옆자리에 앉아 있던 주부 서모씨(47)가 이의를 단다.

“아니에요. 6억원이라던데요.”

결론은 정씨가 내린다.

“3억원이든 6억원이든 한번 크게 걸릴 때까지 이짓(분양권 전매 투자)을 해야 한다는 거 아니겠어요?”

정씨는 타워팰리스, 시티파크 등 웬만한 인기 주상복합에는 청약을 다 해봤다. 투자자다.

반면 서씨는 ‘중동의 40평형 아파트에 사는 실수요자’다.

그런데 정씨나 서씨나 전략은 똑같다. 청약에 당첨됐을 때 분양권에 프리미엄(웃돈)이 붙으면 전매를 하고 붙지 않으면 들어가 살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린 동변상련이에요”라고 했다.

떴다방 심씨도 ‘동병상련’에 끼워줘야 하지 않을까? 서씨는 실수요자요, 정씨는 투자자요, 심씨는 엄연히 떴다방이다. 하지만 세 사람 모두 분양권 프리미엄을 바라보고 있다.

시티파크 청약 낙첨자 25만명이나, 청약은 하지 않았지만 시티파크 신드롬을 앓았던 다른 많은 이들 역시 똑같은 병을 앓고 있는지 모른다.

이철용기자 lc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