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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나바시 요이치 칼럼]이라크 자위대 ‘출구전략’ 세울 때

입력 | 2004-04-15 18:52:00


이라크에서의 일본인 납치사건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처할 것인가. 일본인은 매우 중요하고 힘겨운 시련에 직면해 있다.

그래서 말하지 않았던가. 육상자위대를 이라크에 보내니까 이런 일이 생긴다. 결론부터 말하면 미국의 이라크전쟁은 잘못됐다. 일본 정부가 그걸 지지하고 미국 지원에 뛰어들었으니 결국 나쁜 것은 일본 정부다. 내 맘 속에는 자꾸 이런 생각이 떠오른다.

그러나 3명을 납치한 테러리스트의 요구에 굴복해 이 시점에서 자위대를 철수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 ‘테러리스트 생각대로 따라 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고 한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말은 맞다.

총리가 해 온 일이 옳아서가 아니다. 국난시 정부 비판을 삼가야 하기 때문도 아니다. 국가 체면 때문도 아니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인, 나라의 기본과 틀을 고려해서다. 테러리스트에 굴복하면 일본은 ‘그 정도의 나라’로 받아들여져 장차 일본 국민은 계속 테러 대상이 될 것이다. 테러를 증오하고 싸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테러리스트와의 싸움, 테러와의 싸움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정답은 없다.

‘양보도 교섭도 없다’는 게 원칙이라고 하지만 테러에도 종류가 많다. 알 카에다와 이라크 게릴라는 반미, 반이스라엘 감정이란 공통점을 빼면 목적도 성격도 다르다. 미국이 팔루자의 무장세력을 테러리스트라 부르면서도 ‘정전’이라는 말을 꺼내는 것을 보면 사정을 짐작할 수 있다.

이스라엘의 경우 ‘테러리스트는 살해한다’는 원칙을 지켜 왔지만 증오와 복수가 되풀이되고 있을 뿐이다. 힘만으로, 그것도 군사력만으로 테러를 억누를 수 없다.

미국의 조지 W 부시 정권이 9·11테러 후 취한 정책은 테러리스트도 테러리즘도 꺾기 어려운 것이었다. 민간인 등 600여명이 숨진 팔루자의 비극이 이를 입증한다. (팔루자에서 미국과 무장세력간의 ‘정전 합의’에 의아해 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사실 이라크는 전쟁상태였다. 육상자위대 파견시 ‘비전투지역’이니까 보낸다는 정부 말은 속임수였다.)

부시 정권은 리처드 클라크 전 테러 담당보좌관으로부터 알 카에다의 미 본토 테러 경고를 받았음에도 필요한 대책을 게을리 해 9·11테러 예방에 실패했다. 그 뒤 이라크를 침공해 테러의 소굴로 만들었다. 알 카에다 계열의 테러는 그 뒤로도 세계 각지에서 이어지고 있다. 그들에 의한 테러는 9·11테러 전 30개월보다 그 후 30개월에 일어난 게 더 많다.

클라크 전 보좌관은 저서 ‘모든 적에 맞서’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미국이 직접 가해자가 아닌 이라크를 침공한 것은 알 카에다의 차세대 테러리스트 모집을 도와주는 것이다.’

‘알 카에다에 이만큼 좋은 전쟁은 없다. 마치 오사마 빈 라덴이 산 속에서 부시 대통령을 마인드 컨트롤, 원격조종해 이라크를 침공하게 만든 것 같다.’

이라크전쟁이야말로 ‘테러리스트 생각대로 따라간’ 것이다.

미국은 이라크전쟁의 실수를 인정하고 원인을 철저하게 검증하는 보고서를 작성할 때다. 일본도 이라크 정책을 전면 재검토하고 육상자위대의 ‘출구 전략’을 준비해야 한다. 지금 당장 자위대를 철수하라는 말이 아니다. 잘못된 판단으로부터 철수하라는 말이다.

후나바시 요이치 일본 아사히신문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