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수이볜(陳水扁·사진) 총통의 실언 한마디로 중국 내 대만 첩보조직이 와해되고 있다.
천 총통은 지난해 11월 말 총통선거 유세 도중 중국이 대만을 향해 겨누고 있는 미사일 수(496기)를 구체적으로 공개했다. 미사일이 배치된 기지 이름까지 밝혔다. 이는 극비사항으로 중국 군부에서도 알고 있는 사람이 제한된 내용이다.
중국은 천 총통 발언 직후 간첩 색출에 나섰고 한 달 뒤인 지난해 12월 중국에서 암약하던 대만 고정간첩 19명을 포함해 대만 첩보원 43명을 체포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16일엔 중국의 군사기밀을 대만 정보기관에 넘겨 온 혐의로 공군 장성급 4명이 포함된 간첩단을 검거한 것으로 전해졌다.
AP통신은 이날 홍콩 언론을 인용해 “중국 공군 장성과 장교 10여명이 2월과 3월 간첩 혐의로 체포됐다”며 “체포된 장성과 장교들은 대부분 공군 지휘학원에 근무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학원 원장이면서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대표인 류광즈(劉廣智)소장(한국의 준장급)도 체포됐다.
류 소장은 전인대 개최 직전 중국 공군 차오칭천(喬淸晨) 사령원(참모총장)이 수사요원들과 함께 베이징 공군 지휘학원으로 가서 직접 체포한 것으로 알려졌다. 장교로 근무하던 류 소장의 아들도 함께 체포됐다.
중국 장성이 대만 간첩 혐의로 체포된 것은 수년 전 퇴역 소장이었던 류롄쿤(留連昆)에 이어 두 번째. 대만으로서는 ‘거물급 첩보망’이 노출된 셈이다.
대만 국방부는 류 소장의 체포에 대해 논평을 거부했으며 중국 정부도 공식 발표는 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이번 간첩 사건도 지난해 12월 중국이 검거한 간첩단 사건과 비슷한 맥락에서 이뤄졌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천 총통의 실언과 관련해 대만 야권은 “총통의 발언이 대만 첩보망의 존재를 알려주는 단서가 됐다”고 비난했다. 특히 간첩 체포 사실이 알려지자 “천 총통이 국민투표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국익을 희생시켰다”고 공격하고 있다.
주성원기자 sw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