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종 백인종 황인종 히스패닉계 유아들(왼쪽부터). 저자 리처드 니스벳은 생물학적 혹은 문화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람의 생각하는 방법은 동일하다는 인지과학자들의 전제에 도전한다. 그는 인간의 생각이 동서양 문화차이에 따라 근본적으로 다를 수 있다고 밝힌다.동아일보 자료사진urisesang@donga.com
◇생각의 지도/리처드 니스벳 지음 최인철 옮김/248쪽 1만2900원 김영사
이 책은 동양인과 서양인의 사고(思考)과정에서 나타나는 차이들을 섬세하게 검토하고 있다.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에서 동양(Orient)이라는 말이 이슬람교 중심의 중동(中東)사회를 지칭한다면, 이 책에서 동양(Asia)은 유교와 한자에 근거해서 문화를 형성해 온 한국 중국 일본을 의미한다. 비교문화학적인 태도와 문화심리학적인 관점에서 공자(孔子)의 후손과 아리스토텔레스 후손의 사고방식에 나타나는 차이점들을 고찰하고 있는 셈이다.
저자에 따르면, 서양인은 사물의 개체성을 중요하게 여기며 범주화와 형식논리를 선호하지만, 동양인은 상호의존적 관계성에 근거해 사물을 파악한다. 또한 자기 자신에 대해 설명할 때 서양인은 직접적으로 자신의 성격과 행동을 묘사하지만, 동양인은 가정이나 직장에서 자신이 담당하고 있는 역할이나 관계를 중심으로 표현한다.
중국인들은 상황이 달랐으면 살인사건이 발생하지 않았을 거라고 가정하는 반면, 미국인들은 범인의 인격적 특성이 그대로라면 상황이 다르더라도 사건은 발생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비교는 단순히 문화적인 에피소드들이 아니라, 동서양의 사고(思考) 과정과 그 내용에 나타나는 근원적 차이를 포괄적으로 보여준다는 것이 저자의 기본적 생각이다.
동서양의 비교라는 오래된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접근방법과 설명방식은 대단히 신선하다. 특히 인간의 사고 과정은 문화와 상관없이 동일하다는 보편주의적 관점을 수정해 나가는 장면들은 대단히 시사적이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생각하는 주체(Cogito)를 인간의 가장 보편적인 지표로 인정하며, 생물학적 기원의 동질성 속에서 인간을 사고한다. 자크 데리다의 지적처럼 인간이라는 기호를 마치 역사 문화 언어적 한계가 없는 것처럼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인간의 사고가 문화에 따라 근원적으로 다를 수 있으며, 문화적 차이는 생각의 과정과 내용을 규정하는 근원적 원리라는 사실을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당연한 이야기를 힘들게 반복하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인간의 사고가 갖는 문화적 상대성에 대한 주장은 사고 과정의 동일성을 주장하는 인지과학과 진화심리학의 암묵적인 전제에 심대한 문제를 제기한다.
이 책의 또 다른 특징은 동양과 서양이라는 악명 높은 이분법을 억압하거나 회피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 대신 동서양 사이에서 실증적으로 발견되는 차이점들을 활성화시킴으로써 동서양 문화에 대한 상호이해를 높인다. 다른 문화에 대한 이해는 문화적 차이를 나누어 갖는 과정이고, 문화적 차이는 이분법이라는 배제의 틀에 갇혀서는 안 되며 상호보완이 가능한 지평 속에서 함께 뛰어놀아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책을 읽는 과정에서 리처드 도킨스가 창안한 단어 ‘밈(meme)’이 연상되었다. 밈은 의미(meaning)의 유전자(gene)라는 것으로, 복제되고 전파되는 의미의 단위를 뜻한다.
저자가 역사 심리 논리 언어 경제 등 다양한 측면에서 동서양의 차이를 비교하는 과정은 마치 생각의 유전자 지도를 작성하는 일처럼 느껴진다. 우리의 사고가 ‘동양’이라는 생각의 유전자를 통해 전달되고 복제되는 과정에서 형성된 것이라면, 다른 곳에서 생겨난 생각의 유전자와의 관계 속에서 모방과 복제가 일어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 아닐까.
문화를 ‘실체’로 파악하면 충돌과 대결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이질적인 문화 코드들 사이의 모방과 복제 가능성을 인정한다면, 상호보완적 융합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봄이 오는 길목에서 문화와 관련해 근본적 문제를 다루고 있는 책을 만났다.
김동식 문학평론가·서울대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