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 부부가 진료실을 찾았다.
강인한 인상의 남편이 먼저 입을 열었다.
“썩 맘에 들지는 않았지만 부모님의 권유로 결혼했어요. 그런데 자라온 환경이나 교육 수준이 달라서인지 아내는 살림이나 손님맞이 등에 부족한 게 많았죠. 아내를 윽박지르기도 했지만 내 사람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아내의 내조는 늘 모자랐지만 저는 회사와 가정 외에 한눈을 판적이 없어요. 이제 좀 살만해 졌죠. 그런데 아내가 저 때문에 우울증이 생겼다며 이혼해 달라는 겁니다. 억울한 것은 오히려 접니다.”
연약해 보이는 부인은 울먹였다. 그러나 그동안 쌓인 이야기를 다 하려고 작정한 것처럼 보였다.
“시골의 가난한 집안에서 자라 배우지 못해 남편을 돕지 못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살림하는 능력을 인정받고 남편도 돕고 싶었지만 그럴 기회를 안 줬어요. 살림에 필요한 돈도 그때그때 받아써야 했습니다. 남편을 멋있게 꾸미고 싶었지만 옷을 살 돈이 있어야죠. TV를 보면서 무슨 말을 하면 남편은 알지도 못하면서 무슨 말이냐고 윽박질렀죠. 아이들조차 저를 한심하게 보는 것 같아요. 이렇게는 살 수 없어요.”
부부관계를 규정하는 용어 중 ‘라벨 붙이기’가 있다. 배우자의 부족한 점에 대해 ‘라벨’을 붙이고 나면 모든 행동이 그 라벨을 통해 평가되면서 부정적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이런 행동은 라벨이 붙은 자신도 어느 새 라벨이 규정하는 이상의 능력을 발휘할 수 없다는데 심각성이 있다.
반대로 ‘피그말리온 효과’도 있다. 배우자에 대해 긍정적으로 대우하고 기대감을 가지면 그에 적합한 수준의 행동이 나온다는 것이다. 물론 만족감도 높아진다.
남편은 다행히 이 비유를 정확히 이해했다. 자신의 태도를 바꿔 아내에게 많은 기회를 주기로 결심했다. 아내 역시 남편의 변화를 확인하고 가정과 사회활동 모두를 늘려가면서 그동안 잃었던 삶의 보람을 찾게 됐다. 이 부부는 지금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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