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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삶]‘연기자 꿈’드라마 도전하는 시각장애 장현진씨

입력 | 2004-04-18 18:50:00

탤런트 김현주를 닮았다는 얘기를 자주 듣는다는 시각장애인 장현진씨. 그는 “연기자로 성공하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지금의 도전을 나중에 추억으로 간직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훈구기자


시각장애인 장현진(張賢眞·28)씨의 꿈은 연기자다. ‘소망의 연기자’라는 뜻에서 예명도 ‘소연’이라고 지었다. 대사를 외우려면 남들보다 먼저 대본을 받아 점자(點字)로 고치는 작업을 거쳐야 하지만 그에게 이런 어려움은 즐거움일 뿐이다.

그는 ‘장애인은 연기자가 될 수 없다’는 편견에 대해 “앞을 볼 수 없는 것이 오히려 희로애락의 감정을 표현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고 당당히 맞선다. “볼 수 없는 대신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는 올해 2월 KBS 주최 ‘장애우 방송인 선발대회’에서 우수상을 받았다. 당시 그는 성경 시편 23편을 경상도 사투리 버전으로 읽는 개그연기를 선보였다. 관객석에서 폭소가 터지는 것을 듣고 그는 ‘나도 할 수 있구나’ 하고 자신감을 얻었다.

그의 전직(前職)은 가족상담사. 선교기관에서 장애인들의 고민을 상담하는 일을 하다가 3년 전 본격적으로 방송인의 길로 들어섰다. 현재 극동방송과 KBS라디오에서 리포터와 성우로 활동 중인 그는 TV 드라마에 진출하기 위해 매일 집이 있는 인천과 서울 연기학원을 오가는 ‘열성파’다.

학원에서 비장애인들과 똑같이 수업을 받고 있는 그는, 강사가 자신에 대해 연기평가를 하지 않고 그냥 지나치려고 하면 “왜 내 연기는 지적 안하느냐.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해달라”고 요구하는 ‘당찬 학생’이다.

시각장애 1급인 그는 녹내장으로 인해 태어날 때부터 심한 약시였다. 아홉 살 때 받은 시력회복 수술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완전히 시력을 잃었다. 당시 그를 진료했던 의사는 “두세 살 때만 수술했어도 앞을 볼 수 있었을 텐데…” 하며 아쉬워했다고 한다.

“시력회복의 기회를 놓친 것이 안타까워 사춘기 때 몹시 방황했습니다. 집안형편 때문에 저를 좀 더 일찍 병원에 데려가지 못한 부모님을 원망하기도 했죠. ‘부모님의 마음은 얼마나 아팠을까’를 생각해보면 너무 죄송할 뿐입니다.”

그는 장애인 특수학교 시절 양호 선생님을 잊지 못한다. 연기자의 꿈을 키우던 그에게 선생님은 “장애인이 어떻게 연기를 하느냐”는 말 대신 그를 방송국으로 데리고 다니며 자신감을 북돋워줬다. 그는 “장애인에게 가장 무서운 것은 몸이 불편한 것이 아니라 꿈이 없다는 것”이라며 “동정의 눈길을 보내기보다 ‘장애인도 일반인과 함께 어울려 살 수 있다’는 희망의 얘기를 해주는 사람이 고맙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연기자로서 어떤 역할을 맡고 싶느냐”고 묻자 그는 활짝 웃는 얼굴로 대답했다.

“악독한 여자요. 튀는 거 좋아하거든요.”

정미경기자 micke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