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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리뷰]구로사와 기요시의 색다른 두 작품 동시 개봉

입력 | 2004-04-20 17:59:00


《기타노 다케시와 함께 현대 일본 작가영화를 대표하는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사진)의 ‘밝은 미래’와 ‘강령’이 23일 동시 개봉된다. 기요시 감독의 ‘도플갱어’는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됐으며 올해 초 그의 회고전이 열리는 등 국내에서도 지명도가 높다. 이번에 선보이는 두 작품은 분위기는 다르지만, 인간 내면을 파고들어 삶과 죽음을 끊임없이 대화하게 하는 기요시 감독의 스타일을 공통적으로 드러낸다.독특한 주제의식과 강렬한 상징체계가 담겨 평론가들에게는 신나고 풍부한 해석의 재료를 공급하는 ‘고급 메뉴’들. 그러나 1급 메뉴가 늘 구미에 맞는 건 아니듯, 장르적 관습을 비틀고 내면에서 실마리를 끄집어내는 감독의 영화적 태도는 일반 관객에게 ‘소금’이 부족한 듯 밍밍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공포 부른 욕망 ‘강령(降靈)’

영혼을 불러내는 능력을 가진 주부 준코(후부키 준)는 경찰로부터 유괴된 소녀의 영혼을 불러내 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그러나 소녀는 유괴범에게서 탈출한 뒤 음향기사로 녹음작업을 하러 산에 갔던 남편 사토(야쿠쇼 고지)의 가방 속에 숨어들어왔다. 준코는 자신의 영적 능력을 통해 소녀를 발견한 것처럼 꾸며 유명해지려 하지만, 소녀는 우연한 사고로 죽는다. 부부는 시체를 몰래 묻지만 소녀의 망령이 부부를 따라다닌다. 기요시 감독은 ‘무섭다’는 것의 본질을 파고들며 관습적인 공포의 틀을 해체한다. 인간이 공포에 떠는 것은 평범한 인간 속에 내재한 욕망 때문이라는 해석이다. 욕망은 좌절과 죄의식의 벽에 부딪쳐 반사되면서 귀신으로 나타나 목을 죈다. 이런 의미에서 ‘강령’은 공포영화가 아닌 심리영화에 가깝다. 감독은 시각에서 오는 직접적 공포심보다 관객이 영화 내용을 머릿속에서 체계화하는 과정 속에서 공포가 스물스물 스며 나오는 후발효과에 관심을 둔다. 1999년 작. 15세 이상 관람 가.


○맹독 품은 청춘 ‘밝은 미래’

특별한 꿈도 없이 잠자기만 좋아하는 청년 니무라(오다기리 죠)는 맹독성 해파리를 키우는 선배 마모루(아사노 타다노부)와 친해진다. 마모루는 삶의 갈피를 잡지 못하는 니무라에게 특이한 손 신호를 가르쳐주겠다고 한다. 검지 손가락으로 앞을 가리키면 ‘가라(go)’는 뜻. 자신을 해고시킨 사장을 살해하고 수감된 마모루는 ‘가라’는 손 신호를 남긴 채 감방에서 자살하고, 니무라는 마모루가 키우던 해파리를 하천에 방사한다. 붉은 해파리는 수천마리로 늘어가 도쿄의 하천을 아름답게 수놓으며 사람들을 공격한다. 이 영화는 마모루의 손가락 신호처럼 강렬한 상징을 쏟아낸다. 아름답지만 공격적인 붉은 해파리는 방황하는 청춘과 표류하는 존재론의 상징이 아닐 수 없다. 마모루의 아버지(후지 타츠야)와 니무라는 세대를 대표해 갈등하고 소통하다 결국 서로 이해한다. 그럼에도 해파리를 보고 환호하며 다가선 마모루의 아버지가 해파리에 쏘이는 장면을 통해 감독은 제목처럼 순진무구한 결말을 의도적으로 피해간다. 영화계의 떠오르는 별 오다기리 죠와 ‘고하토’ ‘자토이치’에 출연한 아사노 타다노부 등 일본의 젊은 배우들이 등장한다. 지난해 칸 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진출작. 12세 이상 관람 가.

이승재기자 sj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