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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화제]시력=실력 “안경을 벗어 던져라”…스포츠 스타와 눈

입력 | 2004-04-21 18:26:00


투수판을 떠난 시속 150km의 강속구가 18.44m를 날아 포수 미트에 꽂히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0.44초. 그야말로 눈 깜짝할 새다. 이 찰나의 순간에 타자는 공의 구질을 파악하고 준비 자세인 테이크 백을 한 뒤 방망이를 내밀어야 한다.

그뿐인가. 투수의 기량은 지금 이 순간에도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현대 야구는 커브, 슬라이더, 포크, 스크류, 너클볼 등 각종 변화구에 체인지업, 그리고 직구의 종류만도 투심, 포심, 스플릿핑거 등 다양하다. 반면 타자들은 기껏해야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팔뚝이나 장딴지 힘을 키우든가, 좀더 가벼우면서 재질도 단단한 방망이를 찾아나서는 게 고작. 타격 메커니즘은 국내에 야구가 도입된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더 이상 나아질 게 없기 때문이다.

이에 ‘천하장사’ 심정수(29·현대·사진)는 지난해 11월2일 색다른 시도를 했다. 이승엽(28·롯데 마린스)과 함께 한국을 대표하는 홈런타자인 그에게 부족했던 2%는 난시. 맨눈 시력이 좌우 0.9에서 1.0까지 나오지만 빛이 번져 보이는 난시로 그동안 안경을 썼던 심정수는 결국 난시 교정에 특효라는, 각막층을 레이저로 깎는 라섹 수술을 받았다. 그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심정수의 환희와 좌절

처음엔 날아갈 것 같았다. 교정시력이 1.5로 껑충 뛰었다. 좀 과장하면 야구공이 축구공 만하게 보였다. 집도를 했던 분당 연세플러스안과에선 수술이 성공적이었다며 올해는 60홈런도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 밤에 운전을 하는데 신호등 불빛이 3개로 보이기 시작했다. 낮엔 크게 못 느꼈던 현상. TV를 보는데 어두운 바탕에 흰색 자막이 나오면 또 그랬다. 야간 훈련을 자청해 타석에 서니 네온사인에 비친 공은 더욱 어지럽게 보였다. 오히려 수술 전보다 상황이 악화됐다.안되겠다 싶어 담당 의사를 찾았다. 의사는 부작용이 아니라 임상실험에서 1000명중 2명꼴로 나오는 부적응 현상일 수도 있다고 했다. 시즌은 가까워오고 결국 전지훈련과 시범경기 내내 트레이드마크인 홈런 손맛은 느껴보지 못했다.

그래도 기다렸다. 수술 후 6개월까지는 적응기간이라고 했으니까. 그러나 시즌이 시작되고 나서도 증상은 여전했다. 시범경기 때 당한 부상 후유증도 있었지만 맨눈으로 경기를 한 시즌 초 5경기에서 홈런과 타점 단 1개 없이 타율 0.182. 불과 22타수 만에 9개의 삼진을 당하는 수모를 안았다.

달리 방법이 없었다. 병원을 다시 찾아 난시 보정용 안경을 새로 맞췄다. 의사도 이를 말리지 못했다. 그 후 심정수는 신기하리만치 예전의 타격 감을 다시 찾았다. 13일 롯데전부터 6경기에서 4홈런 11타점에 타율 0.350.

○시력교정 방법에 대한 주위의 평가

은테 안경이 인상적이었던 ‘왕년의 무쇠팔’ 최동원 KBS스카이스포츠 해설위원은 “야구의 경우 타자가 투수보다 훨씬 예민하다”고 말했다. 투수는 다소 시력이 약해도 충분한 훈련과 감각을 이용해 고정 목표물인 포수 미트를 향해 공을 던지면 되지만 타자는 변화무쌍하게 움직이는 공을 때려내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

최 위원은 안경 외에 굳이 렌즈를 착용하든가, 수술을 권하지 않는다. 빛 번짐 현상이 심정수의 말대로 일반인의 생활엔 큰 지장이 없겠지만 야구선수의 경우 치명적일 수도 있다는 것.

그러나 심정수의 팀 동료인 김수경의 의견은 다르다. 6승을 거뒀던 2001년 12월 똑같은 수술을 받았던 그는 전혀 부작용을 느끼지 못했고 이듬해부터 2년 연속 10승대 투수로 올라섰다. 담당 병원측도 “라섹은 안정성이 높은 반면 회복기간이 길다”며 “심정수는 좋아졌다 나빠졌다를 반복하다 결국 정상을 되찾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장환수기자 zangpabo@donga.com

▼우즈 박세리 신진식 김유택…‘침침한 눈’ 수술뒤 성적 ‘선명’

프로골퍼 임진한은 한 TV CF에 출연해 “선배님, 눈이에요. 눈”이라고 말한다. 퍼팅이 번번이 컵을 빗나가는 주말골퍼에게 나쁜 시력이 문제라고 지적해주는 장면이다.

실제로 그럴까.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미국)는 상당한 영향을 받은 듯 하다. 99년 10월 라식수술을 받고 다음해인 2000년 자신의 한 시즌 최다승인 9승을 거두며 역대 미국PGA투어 시즌 최다 상금인 918만달러를 벌어들였다. 답답한 렌즈를 벗어 던진 게 오죽 시원했으면 “라식 수술을 받은 것은 내가 날린 샷 중 가장 멋진 샷이었다. 공이 크고 더 깨끗하게 보인다”고 했을까.

박세리(CJ)는 미국LPGA투어 진출 초기에 “퍼팅 라인을 읽을 때 왜 인상을 쓰냐”는 질문을 자주 받았다. 시력이 나빠 조금이라도 잘 보려면 미간에 힘을 줘야 했다. 박세리는 수술 직후인 2000년엔 단 1승도 거두지 못했지만 다음해 자신의 시즌 최다승인 5승을 올렸다.

두툼한 뿔테 안경이 트레이드마크였던 비제이 싱(피지)도 시력교정수술로 안경을 벗어던지더니 지난해 우즈를 제치고 상금왕에 올랐다. “컵이 훨씬 크게 보인다”는 게 그의 얘기. 실제로 안경을 끼면 실제보다 작게 보이기 마련이다. 골프 잘 치려면 일단 시력이 좋고 볼 일이다.

경희대 경영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시력 교정 수술로 91%이상의 선수들이 경기력 향상 효과를 보고 있다고 한다. 프로농구 SBS 김동광 감독, 김유택 명지고 농구 코치, 남자배구 삼성화재 신진식 등도 라식수술로 시력을 되찾았고 올 프로농구 정규리그 최우수선수 김주성(TG삼보)은 조만간 시력교정수술을 받을 계획.

반면 이충희 전 고려대 감독은 좌우 시력이 0.3에 불과하지만 렌즈도 끼지 않고 코트에 나서 80년대 아시아 최고의 슛쟁이로 이름을 날렸다. 송도고 시절 야간 훈련을 할 때 전기를 아끼려고 불 꺼진 코트에서 슈팅을 자주 던진 탓에 침침한 눈은 별 상관없었다는 얘기.

축구 스타 김은중(서울FC)은 ‘외눈 골잡이’라는 별명을 가졌다. 동북중 3학년 때 경기 도중 공에 왼쪽 눈을 강하게 얻어맞아 시력을 잃은 것. 왼쪽 눈으로는 바로 앞에 선 사람의 얼굴도 구별할 수 없지만 오른쪽 눈으로만 보는 집중적인 훈련 끝에 어려움 없이 그라운드를 누비고 있다.

구기 종목과 달리 격투기는 시력이 경기력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프로씨름의 ‘골리앗’ 김영현(신창건설)은 2m17의 신장에 시력이 좌우 0.1의 근시지만 맨 눈으로 모래판에 올라 몸과 몸을 부딪치며 감각적으로 기술을 구사한다. 장외에서 쓰는 검은 색 뿔테 안경은 그의 트레이드마크.

김종석기자 kjs012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