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가운데)이 21일 서울 영등포 당사에서 17대 총선에서 낙선한 이부영 의원(오른쪽)을 박수로 격려하고 있다. 정치권에선 이 의원 입각설이 나오고 있다. -김경제기자
“너무 빨리 가는 것 아냐. 아직 탄핵국면인데….”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잇단 열린우리당 지도부 면담과 정치적 발언 내용을 놓고 당내 인사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노 대통령은 15일(정동영) 16일(김혁규) 17일(김원기 문희상 유인태) 19일(김근태) 20일(김한길) 21일(당 지도부 19명) 등 총선 당일부터 열린우리당 수뇌부를 연쇄 회동해 정국 전반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다.
문제는 노 대통령이 6월 5일로 예정된 지방선거 재·보선이나 자신의 재신임 문제 등 민감한 현안에 대해 언급한 내용이 외부로 흘러나오면서 정치적 논란을 빚고 있다는 점이다.
당의 우려는 상당히 심각하다. 노 대통령에 대해 드러내놓고 말할 순 없지만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리고 있다”는 비판여론을 우려하는 분위기다. 탄핵심판을 기다리고 있는 노 대통령이 외부로 노출되는 일이 많을수록 부정적인 여론이 형성되면서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걱정이다.
열린우리당 지도부가 21일로 예정됐던 노 대통령과 당 수뇌부 19명의 만찬 취소를 건의했던 것도 이런 당내의 시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당 지도부는 심상치 않은 비판기류를 감지하고 21일 오전 이날 만찬 일정 취소를 청와대에 건의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의 한 핵심관계자는 “취소하려고 했으나 너무 늦었고 해서 그냥 하는 것으로 했다”고 전했다.
당의 다른 관계자도 “지금 대통령이 자꾸 당 사람을 만나 선거승리를 자축하는 것으로 비쳐서는 안 된다. 민생을 챙기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안타까워했다.
당과 청와대 인사들은 노 대통령의 이런 행보에 대해 탄핵가결로 직무가 한 달 이상 정지된 데 따른 상실감을 떨쳐 내려는 것 같다고 지적하고 있다. 최근 노 대통령을 만난 인사들도 “대통령이 엄청 기분이 ‘업된’ 상태”라고 전하고 있다. 노 대통령이 최근 당의 핵심관계자를 면담한 자리에서 총선결과에 대해 기뻐하며 눈물을 보인 것도 그런 심리상태를 반영하는 대목이다.
물론 노 대통령을 면담했던 인사들은 “이해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19일 노 대통령을 만난 김근태 원내대표는 “총선도 끝났는데 그 정도의 감정표현은 해도 되는 것 아니냐”며 “그동안 귀양살이를 많이 했지 않느냐”고 말했다.
윤태영(尹太瀛) 청와대 대변인도 논란을 의식한 듯 이날 “청와대는 헌재의 탄핵심판 결과를 기다리고 있으며, 그 결과에 승복하지 않겠다고 말한 적이 없음을 분명히 말씀드린다”고 못 박았다.
그러나 청와대 내에서도 “노 대통령이 완급조절을 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청와대의 한 핵심관계자는 “오랫동안 갇혀 지내다가 사람들을 다시 만나다 보니 감정제어가 안되는 것 같다. 우리도 어떻게 말리기 어렵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윤영찬기자 yyc11@donga.com
김정훈기자 jng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