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들이 순서도 없이 한꺼번에 피는 요즈음, 신석초(申石艸·1909∼1975) 시인의 생각이 가끔 난다. 그의 제3시집 ‘폭풍의 노래’ 권두의 첫 시는 이렇게 시작된다.
“한국의 꽃은 진달래/개나리 할미꽃/살구꽃 오얏꽃 복사꽃/영산홍 자산홍/모란 작약 해당화/목련 수련 한련화….”
어떤 움직씨도 어떻씨도 없고 앞뒤 차례도 없이 숨 가쁘게 주워섬기는 꽃 이름들을 읽노라면 마치 뭇 꽃이 한꺼번에 피는 이 땅의 올 4월 풍광을 앞질러 노래하고 있는 듯하다. 그의 미발표 유작 ‘사월은 꽃 피네’도 비슷한 가락이다.
▼‘말을 구하기를 목마른 것같이’▼
“(…)4월에는/잠자던 들에/꽃이 피네/민들레 질경이 씀바귀/엉겅퀴 토끼풀 쇠뜨기/지청개 구슬봉이 봄맞이꽃/빨강 진노랑/연분홍 자주빛/보라빛 꽃자주빛/온갖 꿈의 색깔로 아롱지는(…).”
꽃은 꽃으로서 다같이 아름답다. 뜰에 피는 꽃이건, 들에 피는 꽃이건 아름다움에 더함도 덜함도 없고 그 빛깔에 귀함도 천함도 없다. 아무 수식 없이 꽃 이름만 대등하게 나열하는 과묵한 시인의 글줄 사이에 그런 뜻이 읽혀지기도 한다.
이육사(李陸史·1904∼1944)의 막역한 지기이기도 했던 석초 선생을 한동안 가까이한 일이 있다. 한 세대나 위인 노 시인을 자주 뵐 수 있었던 것은 논설위원으로 같은 신문사에서 일한 인연 때문이다. 30여년 전의 일이다. 당시 선생은 환갑의 계관시인이었고 나는 30대의 풋내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생은 사설을 집필하고서 아무도 없으면 나한테까지 와서 한번 읽어 봐 달라고 부탁하는 것이었다. ‘남의 눈’을 거치지 않고선 당신이 쓴 원고를 그대로 출고하지 않는 선생의 겸손함과 엄격함은 젊은 날의 나를 무척이나 감동시켰다.
내가 애독하는 혜경궁 홍씨의 ‘한중록’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근년에는 무슨 글을 지으시든지 보내셔 평론하라 하시고….”
세자를 뒤주에 가둬 죽인 영조가 말년엔 지난 일을 후회하여 사도세자빈인 혜경궁의 숙제(叔弟)를 ‘마음이 서로 맞는 글벗’이라 칭찬하면서 했다는 얘기다. 임금조차 글을 쓰고 나선 군신의 관계를 떠나 ‘남의 눈’으로 본 ‘평론’을 자청했던 것이다.
영조만이 아니다. 또 문장만이 아니다. 문장보다도 만인을 위해 더욱 막중한 정사(政事)에 있어선 조선시대 어진 군주들은 ‘신하들의 말을 구하기를 목마른 것같이’ 했다. 조정에 바른 말 하는 곧은 신하가 있으면 적국이 두려워하고 조정에 같은 말만 있고 이론(異論)이 없으면 안으로 나라가 근심스럽기 때문이었다.
4·15총선에선 30, 40대의 정치 신인이 대거 당선되고 여성 의원도 사상 최다라는 39명이 나오게 됐다. 게다가 민주노동당이 10석의 제3당으로 부상해 바야흐로 17대 국회는 좌에서 우까지 이념적 스펙트럼도 현란해졌다. 뭇 꽃이 빛깔도 다양하게 한꺼번에 피어난 올봄의 자연 풍광과 사뭇 닮은 총선 후 이 땅의 정치 풍광이라고나 할까.
그러나 4월 총선이 가져온 가장 큰 변화는 원내 제3당이던 집권당이 숙원의 과반수 의석을 확보해 여대야소가 됐다는 사실이다. 우리나라 의정 사상 흔치 않은 형국이다. 탄핵소추의 곤욕을 치르고 있는 대통령과 여당은 큰 힘을 얻게 됐다. 그것이 국리민복에 반드시 해로우리란 법은 없다. 하기 나름이다. 다행히 청와대 주변에선 ‘상생’의 정치를 펴겠다는 소리도 들린다.
▼쓴소리에도 ‘열린 우리’ 자세로 ▼
‘상생’이란 물론 귀여운 사람만이 아니라 귀찮은 사람과도 더불어 살겠다는 뜻이다. 야당과, 그보다도 언론이 그런 귀찮은 존재다. 민주 국가에서 야당을 죽이려 하지는 않아도 언론은 죽이려 하는 지도자를 종종 본다. 귀에 거슬리는 소리를 노상 듣기가 그만큼 어려운 것이다. 따라서 상생의 정치는 노무현 정권이 앞으로 언론과의 관계를 어떻게 정립하느냐에 따라 성패가 좌우된다 하겠다.
현 정부의 행적을 ‘남의 눈’으로 보고 평론하는 비판 언론의 쓴소리를 얼마나 ‘열린 우리’의 마음으로 받아들이느냐 하는….
최정호 객원大記者·울산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