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읽는 독자들 중에 ‘넝마주이’를 기억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40대 이전이라면 그 모습을 직접 본 사람은 흔치 않을 것이다. 내가 어린 시절을 보낸 60년대의 서울 종로 부근에서는 등에 망태기를 걸친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집게로 뭔가를 주워 담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이른바 넝마주이였다. 전쟁이 끝난 지 얼마 안 된 그 시절 그들은 길거리를 직업전선으로 택했다.
‘국민소득 2만달러’를 입에 올리는 요즈음도 길거리를 직업전선으로 삼는 사람들이 있다. 과거의 건장한 남자들이 할아버지 할머니들로, 망태기가 손수레나 리어카로 바뀌었지만 하는 일은 다르지 않다. 이들이 수집하는 물건은 예나 지금이나 파지 빈병 등 재활용품들이다.
‘1980년 광주’를 거친 뒤 거리에서 하염없이 하늘을 향해 뻗던 나의 시선과 양팔이 땅을 향하게 된 계기는 아주 우연히 찾아왔다. 교통사고로 실의에 젖어 있을 때 함께 노동운동을 하던 친구 몇 명이 환경사업을 하자고 제안해 온 것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내게 찾아온 ‘장애’만큼이나 ‘환경’이나 ‘재활용’ 등은 낯선 단어였다.
헌옷을 비롯한 여러가지 재활용품을 수집해 아나바다(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자) 운동을 벌이는 동시에 해외로 수출도 하는 사업을 시작한 지 벌써 9년이 되어 간다. 환경문제 해결에 일조하고 동시에 생활고도 해결할 생각으로 시작한 사업이 이제 ‘환경운동’과의 접점을 찾는 고민으로 이어지고 있다. 어떤 이들은 재활용 이전에 소비를 줄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전적으로 동감이다. 하지만 이는 분리해서 볼 사안이라기보다는 적은 소비와 재활용이 하나의 시스템으로 연결돼야 한다는 전제 위에서 동의한다.
우리 일상생활의 거의 모든 물품이 재활용 자원이다. 종이류 금속류 플라스틱류(일명 물렁이) 병류 스티로폼 헌옷 등 생활 주변의 모든 것이 쓰레기가 아니라 자원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들 자원은 재활용되지 못하고 비용을 들여 쓰레기로 처리되고 있다. 그렇게 하고 나서 우리나라는 2003년에만 폐자원 수입에 1조7000여억원을 썼다고 한다. 이는 비용의 문제만이 아니라 환경문제이기도 하다. 동시에 일자리 창출에 대한 우리의 시각도 재고할 필요가 있다. 투자 대비 이윤이라는 단기적인 시각만으로는 환경문제도, 일자리 창출도 해결하기 힘들다. 거기에는 생활조차 절박한 이들에 대한 배려가 빠져 있기 때문이다.
외환위기 때 부천의 한 복지관 앞에서 헌옷을 모아 1주일에 한번 알뜰시장을 연 적이 있다. 거기서 만난 대부분의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좋은 옷’이 아니라 ‘필요한 옷’이었다. 가령 그들에게는 유명 브랜드의 옷이 아니라 당장 애들에게 입힐 옷이 필요했다. 한 주부의 하소연이 지금도 귀에 선하다. “다음엔 꼭 우리 아이들이 입을 수 있는 옷도 갖고 와 주세요.”
그때 옷에 붙인 500원, 1000원의 가격표는 복지관에 기증할 몫일 뿐 아니라 재활용품을 나누는 기쁨의 스티커였다. 그 이후 나의 꿈도 거창한 것이 아니라 주위 사람들과 함께 하는 ‘작은 행복 나누기’로 자리 잡았다.
정재용 재생상사 대표
약력:△1960년 서울 출생 △대학 졸업 후 86년부터 5년간 인천에서 노동운동 △96년 재활용업체 ‘재생상사’ 설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