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부천시 소사구 부천혜림원에서 장애인 청소년들이 교사들의 지도를 받으며 인라인스케이트를 타고 있다. -부천=권주훈기자
23일 오전 경기 부천시 소사구의 정신지체장애인 생활시설인 부천혜림원 안 공터.
장애인 청소년들이 가장 좋아하는 인라인스케이트 시간이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교사들과 장애 청소년들 사이에 ‘작은 전쟁’이 시작됐다.
교사들은 스케이트와 보호장비를 장애 청소년들에게 신기기 위해 안간힘을 썼으나 정신지체가 심한 장애 청소년들은 답답하다며 거부하기 일쑤다.
“허리를 펴세요” “무릎 구부려” 등 간단한 지시도 장애 청소년들은 잘 알아듣지 못한다. 답답하다고 칭얼대는 이들도 한둘이 아니다. 교사들이 진땀을 흘리며 일일이 그들의 다리와 손을 잡아줘 장비를 다 갖추고 나면 어느덧 30분이 훌쩍 지나가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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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전쟁’이 끝나고 나면 행복한 시간이 시작된다. 장애 청소년들은 바퀴가 달린 스케이트에 몸을 싣고 미끄러지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환한 표정으로 달린다.
부천혜림원에는 장은미양(15)을 포함해 모두 16명의 인라인스케이트 ‘선수’들이 있다. 모두 정신지체 1, 2급 장애인이며 10대 청소년들이다. 스케이트를 신는 것조차 도움을 받아야 하지만 막상 스케이트만 신으면 20km 정도는 거뜬히 완주하는 실력을 갖췄다.
이들이 인라인스케이트를 타게 된 것은 김태형 교사(30)의 노력 덕분이었다. 김 교사는 2002년 운동이 부족한 장애인들에게 ‘재미’와 ‘건강’을 함께 줘야겠다는 생각에서 이 운동을 권했다. 이후 1주일에 두번, 인근 공터나 공원을 찾았다.
청소년들의 실력도 나날이 늘고 있다. 균형 감각이 부족해 두 발로 스케이트를 타면 항상 넘어지기만 했던 엽태석군(14). 1년 동안 한 발로 땅을 밀고 다른 한 발로만 스케이트를 타다 지난해 초 드디어 두 발로 스케이트를 타는 데 성공했다.
엽군이 두 발로 스케이트를 타고 힘차게 미끄러지는 순간 교사들은 악수를 하고 서로 얼싸안으며 기쁨을 나눴다. 엽군은 최근 인라인스케이트대회에 나가 20km를 완주하기도 했다.
16명의 장애 청소년 스케이트 선수들은 최근 새로운 목표를 세웠다. 6월부터 한 달 동안 인라인스케이트를 타고 부산을 출발해 통일전망대까지 달리는 국토 종단 스케이트를 계획하고 있는 것.
이들 중 ‘국토 종단’이라는 단어조차 잘 못 알아듣는 이들이 많지만 “스케이트 타고 야영도 하며 오래 달린다”는 교사들의 말에 모두 기대에 젖어 잔뜩 들떠 있다.
김 교사는 “사실 하루에 30km를 달려야 하는 강행군이라 걱정이 앞서지만 우리 아이들이 꼭 해낼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장애인들도 비장애인과 다름없이 운동과 취미로 즐거움을 찾을 수 있고 노력하면 이룩하지 못할 일이 없다는 사실을 널리 알리고 싶습니다.” 그가 밝힌 국토종단 행사의 취지다.
신수정기자 crysta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