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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스포츠카페]39경기 연속안타 신기록 박종호

입력 | 2004-04-25 18:17:00

프로데뷔 12년만에 연봉 1500만원 짜리 평범한 선수에서 4년간 22억원짜리 ‘거물’로 탈바꿈한 박종호. 연속경기 안타 행진은 ‘39’에서 멈췄지만 결코 실망하지 않는다. 원대연기자


한 야구선수가 있었다. 연봉 1500만원짜리 평범한 선수. 그는 남과 다른 선수가 되기 위해 무던히 노력했다. 평범한 재능으로 특별한 선수가 되려 했으니 남보다 2배, 3배의 노력이 필요했을 터.

원래는 오른손잡이였다. 하지만 양손을 다 쓰는 스위치타자가 되기 위해 왼손잡이가 되기로 했다. 칫솔질도 왼손으로 했고 밥 먹을 때도 왼손으로 숟가락질을 했다. 탁구도 왼손으로 쳤다.

“다시 태어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오른쪽은 완전히 잊고 왼쪽으로만 모든 생활을 했어요. 굉장히 힘들었는데 만약 그때 포기했다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겠죠.”

12년 후. 그는 4년간 22억원짜리 계약의 ‘대박’을 터뜨렸다. 더욱 놀라운 건 39경기 연속안타 신기록으로 국내는 물론 아시아 신기록까지 세운 것. 이제 그를 보통선수라 여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삼성 라이온즈 박종호(31). 22일 낮 가랑비가 내리는 가운데 수원 원정숙소인 모 호텔 커피숍에서 그를 만났다. 박종호는 자리에 앉자마자 자꾸 날씨 얘기를 했다. “비 계속 오죠? 그치면 안 되는데….”

저녁에 현대전이 예정돼 있었는데 그는 은근히 경기가 취소되길 기대하고 있었다. “요새 너무 피곤해서요. 하루 취소돼 푹 쉬었으면 좋겠어요.” 그는 연속경기 안타 행진을 하는 동안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신경을 쓰느라 몸무게가 4kg이나 빠졌다고 했다.

“재미는 있어요. 타석에 설 때마다 짜릿하고…. 전광판을 자주 보는 습관도 들었어요. 앞으로 내 타석이 얼마나 돌아오나 계산도 해보죠. 하지만 신경이 많이 쓰이는 건 사실이죠. 한 번만 못 치면 기록이 깨지는 거니까.”

가뜩이나 까만 얼굴이 더욱 피곤해 보였다. 안타를 치기까지 매 타석이 그에겐 긴장과 스트레스의 시간이 아니었나 싶었다. “1회나 2회 안타를 치면 ‘하루 일 다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다음부터는 팀배팅에 주력했죠. 사실 감독님이나 팀 선수들에게 미안한 감이 들죠.”

기록도전에 나서는 선수가 있으면 동료나 코칭스태프들이 도와주려고 더 신경쓰는 게 사실. 그러다 보면 팀플레이가 잘 되지 않는다.

만약 연속안타 행진중인 박종호에게 삼성 김응룡 감독이 보내기 번트를 지시했다면 언론과 팬들로부터 욕을 ‘바가지’로 먹었을 게 분명했다. 번트가 많을 수밖에 없는 2번 타순에 배치된 박종호인데도 그는 “보내기 번트 지시를 받은 적이 없다”고 했다.

만약 보내기 번트 사인이 나온다면? “당연히 대야죠. 팀승리가 중요한 것 아니겠어요. 기꺼이 댈 겁니다.”

하지만 어찌 기록달성에 대한 욕심이 없으랴. 그는 지난해 현대에서 뛸 때 기록과 팀 승리의 갈림길에서 고민한 적이 있었다.

삼성전에 나선 박종호는 홈런과 3루타, 2루타를 모두 때려내 마지막 타석에서 단타 1개만 추가하면 대망의 첫 사이클링 히트를 달성할 수 있었다. 하지만 1점차로 뒤진 상태라 현대 김재박 감독은 매정하게 보내기 번트 사인을 냈다.

결과는? 박종호는 보내기 번트에 실패하며 2스트라이크가 된 뒤 유격수 땅볼로 물러나고 진루도 시키지 못했다. 팀도 졌다.

“당시엔 별로 서운한 감정이 없었어요. 하지만 지나고 보니까 조금 섭섭한 맘이 생기더라구요.”

연속경기 안타 행진을 하면 징크스 하나는 생길 법했다. 하지만 그는 면도를 말끔히 한 얼굴. 예전의 김성근 감독은 면도는 해도 속옷을 안 갈아입었다는데….

아니나 다를까. 박종호에게도 징크스는 있었다. 남들은 다 여름용 망사 유니폼을 입었는데 그는 혼자 겨울용 두꺼운 유니폼 차림. “수염은 깎아도 유니폼만은 그대로 입고 싶었다”는 게 그의 설명. 그럼, 연속경기 안타를 계속할 수 있었던 비결은 뭘까. 그는 꾸준함의 비결을 “과거를 빨리 잊어버리는 것”이라고 했다. “지난 일은 빨리 잊을수록 좋아요. 어제 일은 어제로 끝내고 오늘은 다시 새롭게 노력하려고 하죠.”

공교롭게도 인터뷰를 한 22일 박종호의 연속경기 안타 행진은 ‘39’에서 막을 내렸다. “비가 와서 경기를 안 할줄 알고 방심했다”는 게 그의 설명.

하지만 박종호는 “그동안 팀이 나를 많이 도와줬으니 이제부턴 내가 팀에 많은 도움을 주겠다”며 훌훌 털고 일어났다. 근성과 성실함으로 똘똘 뭉친 그이기에 새롭게 1부터 다시 시작할 것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내 인생은 내가 개척한다.’

12년 전인 92년 프로에 입단할 때부터 박종호가 마음속에 간직해온 좌우명이다. 그가 개척해온 야구인생은 얼마나 근사한가. 또, 앞으로 얼마나 멋질까.

김상수기자 ss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