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연승(李娟昇·36) 현대중공업 선박해양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얼마 전 모형제작 담당자로부터 “수고했어”라는 단순한 한마디를 듣고 눈시울을 붉혔다.
2000년 ‘현대중공업 연구소 사상 최초이자 유일한 여성 연구원’이라는 화려한 타이틀을 달고 입사했지만 남성 중심의 조선업계에서 ‘외톨이’처럼 지내야만 했던 그동안의 설움이 한꺼번에 녹아내리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가 처음 입사했을 때 아버지뻘인 모형제작 담당자들은 선박모형을 만들어 달라는 그의 부탁에 탐탁지 않은 표정부터 지었다. 동료 연구원들도 그와 얘기하는 것을 꺼리는 분위기였다.
4년이 흐른 지금 그를 바라보는 동료 연구원과 직원들의 눈길은 변했다. 2002년 그가 이끌던 연구팀이 현대중공업 최우수기술상을 받으면서 그는 ‘최초’가 아닌 ‘실력’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는 “조선공학은 거칠고 남성적일 것이라는 선입견과는 달리 섬세함과 정확성이 요구되기 때문에 오히려 여성에게 유리한 분야”라고 설명했다.
그는 조선공학 분야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박사이다. 2000년 독일 베를린대에서 선박설계로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유럽 조선업계에서 여성의 진출이 활발한 것을 보고 느낀 점이 많았다”고 한다. 한국에 돌아온 후 그가 학교가 아닌 기업 현장으로 달려간 것도 직접 배를 만들어보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다.
그의 전공은 선형(船形) 설계. 컴퓨터를 이용해 경제성, 속도, 연료 효율성을 최대한 살려줄 수 있는 선체의 모양을 만드는 것으로, 선박설계의 핵심 분야로 꼽힌다. 요즘 그는 무게 8만t, 길이 350m에 달하는 초대형 컨테이너선을 만들고 있지만 어린 시절 동경의 대상이었던 요트와 유람선을 만들겠다는 욕심도 버리지 않고 있다.
그는 “4년 전에는 나 하나였지만 지금은 여성 연구원이 4명이나 된다”면서 “나 같은 여성 조선공학도가 더 이상 뉴스가 되지 않는 세상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미경기자 micke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