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EU 확대론은 미국의 조지 W 부시 행정부 출범 이후 더욱 힘을 얻었다. 부시 행정부의 일방주의에 맞서려면 유럽이 몸집부터 불려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회원국 확대를 보는 유럽통합 회의론자들의 눈길은 차갑다. 이들은 “몸집이 커지면 결속의 질만 떨어질 것”이라고 걱정한다. 심지어 “EU가 아니라 ‘팍스 아메리카나’의 확대일 뿐”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왜 그럴까?
무엇보다 중·동유럽 신규 가입국이 대부분 미국의 영향력 아래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EU본부의 장 크리스토프 필로리 확대담당 집행위원 대변인도 “중·동유럽 나라들은 역사적으로 미국과 강하게 연계돼 있는 게 사실”이라며 “사회주의 해방 과정에서 미국의 지원을 받았고, 지금도 미국이 주도하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우산 아래 안전을 보장받고 있다”고 말했다.
단적인 예로, 이라크전쟁을 둘러싸고 미국 영국과 프랑스 독일이 갈렸을 때 중·동유럽 10개국은 미국의 손을 들어줬다.
이들 10개국 대부분은 영어를 제1외국어로 사용한다. 이번 확대로 EU본부는 새 회원국에서 본부직원 3000명을 채용할 예정. 이 가운데 영어를 제1외국어로 쓰는 사람이 60%나 된다.
이런 사정은 ‘유럽통합의 기관차’를 자임해 온 프랑스와 독일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 두 나라가 EU 확대를 앞두고 더 밀착하는 것도 위기감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앞으로도 EU는 이라크 전후 처리와 유럽 독자 방위 문제 등 미국과 이해가 충돌할 사안이 적지 않다. 만일 EU가 내부 분열로 계속 미국에 휘둘리게 된다면 ‘경제 거인, 정치 난쟁이’라는 지금의 오명을 안고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브뤼셀=박제균특파원 ph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