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서울 성동구 마장동 대한적십자사 서울지사 창고에서 적십자사 직원과 자원봉사자들이 북한 용천에 보낼 구호품을 정리하고 있다.
북한 용천역 열차 폭발 참사는 이미 반세기 전 고향을 떠나온 용천군 출신 실향민들에게도 엄청난 충격을 던져주었다.
사고가 일어난 용천역 부근에 살았던 실향민들은 시시각각 전해오는 소식을 접하며 가족이나 친척들이 화를 당하지는 않았을까 애태우고 있다.
특히 25일 신문과 방송을 통해 깊이가 10여m나 되는 구덩이와 건물 한 층이 완전히 날아가 버린 용천소학교 등 처참한 사고현장 사진이 공개되자 낙담하는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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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사는 용천 출신 실향민 30여명은 25일 부랴부랴 만나 사고 소식을 나누며 모금운동 등 지원대책을 논의했다. 남한에 있는 용천군 출신 실향민은 3000여명. 이북5도청 용천군수 조경하씨(74)는 25일 “형수와 조카들이 용천에 사는데 연락할 방법조차 없다. 갈 수 있는 방법만 있다면 한 걸음에라도 달려가고 싶은데 너무 안타까워 못 견디겠다”며 발을 동동 굴렀다.
1947년 용천에서 남하한 김병서씨(79)는 “25일 밤 서울에서 용천 출신 실향민 30여명이 모여 고향에서의 사고 소식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며 “다들 갑작스러운 사고에 무척 안타까워하더라”고 전했다.
이들은 대부분 광복 전후나 6·25전쟁 중 부모의 손을 잡고 남한으로 내려온 사람으로 아직도 어린 시절의 기억들을 간직하고 있다.
용천군 외상면이 고향으로 용천소학교를 1년간 다녔다는 장충식(張忠植) 단국대 이사장은 “내가 기억하는 용천은 조용한 곡창지대로 경공업이 특히 발달한 곳이었다. 사고 지점에서 자동차로 30∼40분 걸리는 곳에 살았는데 사고 소식을 들으니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장 이사장은 “지금도 사촌과 육촌 형님들이 용천에 살고 있는데 생사 여부를 알 수 없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장상(張裳) 전 이화여대 총장은 “용천군 북중면이 고향인데 일곱 살 때 남쪽으로 피란을 내려와 구체적인 기억은 잘 떠오르지 않지만 이번 사고를 보며 고향 생각도 나고 해서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장주근 전 경기대 국문학과 교수(79)는 “1947년 봄 용천을 떠나오기 전까지 용천소학교에서 3년 동안 교편을 잡았다”며 “당시 용천소학교는 지금의 용천에서 10여km 떨어진 용암포에 있었는데, 폭발 소식을 듣고 용암포에서 사고가 난 줄 알고 걱정했다”고 말했다.
용암포 출신인 이인철 전 동아일보 외신부 차장(70)은 “용천은 압록강 인근 북한과 중국의 국경 맨 끝자락이어서 6·25전쟁 당시 유엔군이 북진할 때도 그 지역에는 들어가지 못했다”고 회고했다.
성우회 사무총장 장정열(張正烈·71)씨는 “용천역은 예전에 내가 살던 곳에서 3∼4km 떨어진 곳”이라며 “지금 어떻게 변했는지 평소에도 궁금했는데 너무 비참한 사고현장을 보게 돼 뭐라 할 말이 없다”고 말했다.
이우근(李宇根·56)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는 “용천이 선친의 고향인데 처음 들었을 때 그 용천인지 의심했다가 나중에 너무 큰 충격을 받았다”며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법원 차원에서도 도울 방법을 강구해 보겠다”고 말했다.
이들 실향민과 탈북자에 의하면 용천소학교는 4학년까지 있고, 1개 학년은 7학급으로 구성돼 있다. 한 학급 학생은 35∼40명. 북한 당국이 발표한 폭발사고 희생자 161명 중 절반에 가까운 76명이 이 학교 어린이다.
이런 옛 기억들을 떠올린 실향민들은 앞으로 이북5도와 용천 출신들이 적극적으로 돕기로 했다고 밝혔다.
조 군수는 “우선 용천 출신 실향민과 탈북자들이 성금을 모으기로 했다”며 “용천군민회와 소학교, 중학교 동창회가 있는데 이를 중심으로 적극적인 지원책을 모색하겠다”고 말했다.
이북5도청 평북 도지사인 차인태(車仁泰·60·전 아나운서)씨는 “26일 오전 회의를 열어 구체적인 지원 대책을 마련할 것”이라며 “복구 지원이 적극적으로 이뤄지고 이를 계기로 남북관계가 개선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정원수기자 needjung@donga.com
전지원기자 podragon@donga.com
신수정기자 cryst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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