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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대대신 창호지…약없어 약초 캐

입력 | 2004-04-26 00:31:00


1989년부터 1996년까지 함경북도 청진시에서 내과와 소아과 의사로 일한 김지은씨(38)는 “아무리 심각하다고 말해도 남한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며 “참사를 보면서 가슴이 터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씨는 “화상 환자들이 많을 텐데 기초적인 항생제나 붕대, 소독약도 없는 실정”이라며 “북한이 얼마나 바쁘면(힘들면) 그 자존심에 국제사회에 도움을 요청할까 싶다”고 말했다.

김씨에 따르면 약솜이 아닌 펄프로 만든 인조 솜조차 모자라 소독해서 쓰는 형편이라고 한다.

붕대 대신 창호지를 가위로 길게 잘라 바르고 중국에서 수입한 빈 맥주병으로 링거병을 대신한다.

유리주사기의 경우 바늘을 소독해서 재활용하다가 녹이 생기면 치약이나 백분으로 녹을 제거한 뒤 다시 쓴다.

이번에 참사가 발생한 용천역에서 8km 떨어진 신의주시 낙원기계연합기업소 병원에서 30여년간 의사로 일한 김모씨(66)는 “1998년까지도 상황이 열악했는데 그 뒤로 더 안 좋아졌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약이 모자라 의사와 간호사 등 ‘의료일꾼’들이 1년에 두 번씩 산골에 가서 약초를 캐온다”며 “한 사람이 의무적으로 1년간 마른 약재 10kg을 가져와야 하며 병원의 약은 대부분 한약재로 대체됐다”고 말했다.

필름이 없어 X선 촬영은 거의 하지 못한다. 정전이 잦지만 수술실에서 촛불을 켜면 오염이 되기 때문에 수술 때면 중국제 손전등을 준비하고 있다가 정전이 되면 간호사가 의자에 올라가 수술 부위를 비춘다고 한다. 링거와 주삿바늘을 잇는 관은 고무관으로 쓰는데 너무 자주 소독하다보니 소독약 때문에 관이 퉁퉁 붓는 경우도 있다.

지난해 2월 북한을 다녀온 경기 부천 세종병원 박영관 이사장은 “북한의 의료수준은 우리나라의 50년대와 흡사하다”며 “주사기가 모자라 일회용 주사기를 여러 번 쓰고 있으며 이런 사정은 여건이 가장 좋다는 평양도 예외가 아니다”고 말했다.

북한의 보건의료부문은 무상지원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병원은 오지까지 설치돼 있으며 의료 인력이나 병상도 비교적 충실한 편. 그러나 전기와 용수 부족, 만성적인 의약품 부족으로 곤란을 겪고 있다.

장강명기자 tesomiom@donga.com

김상훈기자 core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