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용천역 폭발 사고로 인한 부상자들의 상태가 심각한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오전 수업을 마치고 학교 건물을 나서다 갑자기 날아든 돌멩이, 유리 파편 등에 맞거나 폭발로 인한 열에 화상을 입은 용천 소학교 어린이 중 상당수는 위급한 상태인 것으로 파악됐다.
25일 부상자들을 수용하고 있는 신의주 병원을 찾은 국제 조사단원들은 "살면서 지금까지 접한 상황 가운데 가장 비극적인 장면"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제대로 된 의료 장비나 의약품이 거의 없다시피 해 희생자가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면서 국제 사회의 신속한 지원을 요청했다.
▽화상 입고, 파편에 찢어지고=신의주 병원에 수용된 환자 360명 가운데 60%는 어린이 환자. 세계식량계획(WFP) 직원 리처드 레건은 전신에 화상을 입은 어린이 5명의 모습을 전하면서 "모두들 얼굴 피부가 거의 다 벗겨진 상태였다"고 말했다.
"7세 가량의 한 어린이는 혼수 상태였다. 부모들은 거의 정신이 나간 상태였다. 그들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고 있었고, 아이는 부모의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돌멩이, 유리 조각 등 파편에 맞아 얼굴이 찢어지거나 눈을 다친 어린이들도 상당수였다. 세계식량계획(WFP)의 토니 밴버리는 "얼굴에 입은 상처를 대충 꿰맨 어린이들이 고통에 몸을 구르거나 신음하는 모습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면서 "어떤 어린이 환자는 이미 실명한 상태였다"고 전했다. 의사들에 따르면 실명 환자는 지금까지 모두 5명.
푸에르토 불티 유엔아동기금(UNICEF) 평양 주재 대표는 "사고가 난 시간은 학생들이 오전 수업을 막 마치고 학교 건물을 나서던 순간이었다"면서 "폭발로 인한 열과 파편이 학생들을 정면으로 덮쳤다"고 말했다.
어린이 환자들 사이로 신원을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얼굴이 일그러진 한 50대 여인이 누워 있었다. 평양 주재 유엔 직원 마수드 하이더는 "폭발 현장을 정면으로 바라봤던 사람들 가운데 얼굴이 온전한 사람은 없다고 말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북한 당국의 발표에 따르면 이번 사고로 인한 부상자는 1300명이며 그 가운데 중상자는 370명. 한 외신은 중상자 가운데 15명이 이미 숨졌고 50명이 중태라고 보도했다.
▽침상 대신 캐비넷에=조사단원들을 더욱 충격에 빠뜨린 장면은 일부 어린이 환자들이 서류용 캐비넷 위에 눕혀져 있는 장면이었다. 밀려든 환자에 비해 병상이 부족하기 때문이었다.
항생제, 진통제, 스테로이드 등 의약품도 턱없이 부족하다고 조사단원들은 전했다. 의료 장비들도 대부분 작동되지 않고 있었다. 고장이 났거나 전기가 공급되지 않아 가동하지 못하고 있는 것. 밴버리씨는 "작동되는 장비를 하나도 보지 못했다. 깨끗한 붕대도, 깨끗한 침대보도, 어느 것 하나 제대로인 게 하나도 없었다"고 실태를 전했다.
북한의 병원들은 평상시에도 의약품이나 수술 도구를 갖추지 못했으며 수돗물마저 제대로 공급이 안 되는 등 환자들을 제대로 치료할 수 없는 상태였다.
이에 따라 추가 감염 우려도 커지고 있는 상황. 스웨덴의 한 특사는 "북한은 열악한 장비와 의약품으로 부상자를 살리기 위한 전쟁을 치르고 있다"면서 "이 정도 상황이면 사망자 수가 더 늘어날 것으로 우려된다"고 말했다.
조사단원들은 "지금은 부상자들을 위한 긴급 조치가 필요한 상황"이라며 "북한 당국이 예상보다 빨리 병원 상황을 공개한 것도 이런 도움을 바라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금동근기자 go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