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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바흐! 아흐~ 안무가 나초 두아토의 ‘멀티플리시티’

입력 | 2004-04-26 18:06:00

나초 두아토


바흐의 음악이 춤으로 무대에 오른다.

세계적인 무용가 겸 안무가인 나초 두아토(47)가 예술감독으로 있는 스페인 국립무용단이 바로크 시대의 음악을 대표하는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1685∼1750)의 삶과 음악을 무용으로 그려낸 ‘멀티플리시티(Multiplicity)’를 한국 팬들에게 선보인다. 바흐 서거 250주년을 기념해 독일 바이마르시와 스페인 국립무용단이 1999년 공동으로 만든 작품이다. 30일∼5월 2일 서울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

이 작품은 한 안무가가 바흐에게 그의 음악을 무용에 사용하도록 허락해달라고 청하며 춤추는 것으로 시작된다. 작품 속에서 무용수들은 악기가 되어 음악을 연주하고 음표가 되어 선율을 보여준다. 바흐의 음악을 무용으로 형상화해내는 두아토의 천재적 안무 감각을 엿볼 수 있는 무대다.

나초 두아토가 안무한 ‘멀티플리시티’에서는 바흐 역의 남자무용수가 마치 첼로를 연주하듯, 여자 무용수와 함께 추는 독특한 2인무를 선보인다. 이 춤은 안무가의 재기발랄하고 자유분방한 감각을 드러내는데 바흐의 ‘이성적’ 음악을 바탕으로 했다고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선정적 분위기를 풍기는 점이 특이하다. 사진제공 예술의 전당

두아토는 네덜란드 댄스 시어터의 단장이자 전설적 안무가였던 지리 킬리안(57)의 후계자로 발탁돼 1980년대 이후 세계 무용계의 스타로 떠올랐다. 그는 1988년 네덜란드 댄스 시어터의 상임안무가를 거쳐, 1990년 33세의 나이에 고국인 스페인의 국립무용단 예술감독으로 초빙된 이후 이 무용단을 세계 최고의 무용단 반열에 올려놓았다. 두아토의 춤은 스페인의 독특한 정서와 발레 전통에서 구축된 미적 감각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는 다양한 음악을 절제된 몸동작으로 정교하게 형상화해 내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2막으로 구성된 ‘멀티플리시티’에서 그는 바흐를 종교적이고 경건한 모습이 아니라 인간적이고 정열적인 형상으로 그려낸다.

먼저 1막 ‘멀티플리시티’는 글렌 굴드의 나지막한 피아노 선율을 타고 흐르는 ‘골드베르크 변주곡’에 맞춰 안무가의 힘에 넘치는 프롤로그로 막이 오른다. 안무가 역은 본래 두아토가 맡기로 돼 있었으나 안타깝게도 허리부상으로 내한하지 못했다. 이어 바흐의 지휘에 따라 18명의 무용수가 세속 칸타타 곡에 맞춰 경쾌한 몸짓으로 연주한다. 유명한 무반주 첼로 모음곡 중 ‘프렐류드’가 흐르면서 바흐가 여자무용수의 몸을 첼로로 삼아 연주하는 2인무에 이르면 두아토의 기발한 천재성에 절로 감탄이 나온다.

나초 두아토는 바흐의 경쾌한 ‘폴로네이스’를 남성 2인무로 선보인다.

1막에서 바흐로부터 받은 영감을 다채로운 춤으로 형상화했다면, 2막 ‘침묵과 공(空)의 형상’에서는 바흐 작품에 담겨진 ‘죽음’의 주제를 통해 바흐의 내면으로 파고든다.

1막에서 보여준 두아토의 유머감각은 사라지고, ‘푸가의 기법’이 연주되는 가운데 죽음을 상징하는 검은 스커트에 하얀 가면을 쓴 여인이 등장해 바흐를 쫓아다닌다. 결국 바흐가 죽음에 이른 뒤 안무가의 솔로가 이어지며 대미를 장식한다.

끊임없이 무대 위를 가로지르는 무용수들의 움직임에서 두아토의 뛰어난 공간 활용능력을 엿볼 수 있다.

30일∼5월 1일 오후 7시반, 2일 오후 4시. 2만∼10만원. 1588-7890

김형찬기자 khc@donga.com